무디의 무책임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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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대표선수를 만들어야 한다

비밀은 아닌 이야기...(138)

 지난 3월 말, 일본 2012 도쿄 국제 애니메이션 박람회(TAF)에 들렀습니다. 주 목적은 다른 비즈니스에 있는 일본 행이었는데, 중간 남는 시간을 할애해서 들리게 된 거였죠. 아직 TAF 를 직접 보지 못했기에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개장 직전 주위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여러 아시아권 나라 사람들을 보며 기대는 더욱 고조되었습니다. 하지만 떨리는 가슴은 입장하고 얼마 뒤 바로 침착(?!)하게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보다 규모가 다소 축소되었다고 들었는데 과연 기대보다는 행사가 크지 않다는 것을 입장 직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작년 지진의 영향도 없지 않았을 거고요. 전체적인 느낌은 국내에서 진행하는 캐릭터 페어에 비해 오히려 활기가 다소 떨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느낌이 저 개인만의 느낌이 아닌 것은 행사장에서 만난 여러 국내업체 분들과의 짧은 대화에서도 드러났습니다. 문제는 하나였습니다. 2012년 도쿄 국제 애니메이션 박람회에서… 일본이 자랑할 만한, 달리 말하면 국내의 여러 방송사 관계자들과 애니메이션 및 캐릭터 사업 관련자들이 탐을 낼 만한 작품이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두말할 필요 없는 애니메이션 강국입니다. 특히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쏟아진 일본의 수많은 TV애니메이션 작품들은 우리나라의 여러 케이블 채널이 방송을 운영할 수 있을 정도로 양적으로도 또한 질적으로도 우수했습니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케이블 내에서 가장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들의 대부분을 애니메이션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만큼 국내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이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근본 원인은 하나입니다. 그만큼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본 애니메이션이 무조건(!) 재미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국내에 들어오는, 달리 표현하면 외국으로 인기리에 수출되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경우라고 제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라고 해서 꼭 양질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굳이 수출이 필요 없을 정도로 탄탄한 일본 내수시장에서 검증(!)된 작품들의 경쟁력은 매우 우수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작품들을 확보하기 위해 국내 관계자들의 불꽃 튀는 경쟁이 있어왔죠. 그러기에 유력한 작품을 일찍 접하고 일본 관계자들과 비즈니스 미팅을 진행할 수 있는 도쿄 국제 애니메이션 박람회는 매우 중요한 행사였습니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가 침체를 겪기 시작하며 그 의미가 조금씩 축소되어가고 있었죠. 아마도 제가 경험한 올해가 가장 최악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당장 올해 주목할 작품이 없긴 하지만 일본의 영향력은 약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제작해온 과거 작품들의 힘이 아직 건재한 편이고 이런 작품들의 재계약 여부만 해도 국내에선 상당한 비즈니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본 내수 시장의 침체는 확실히 표면 위로 드러나는 분위기였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드물었던 일본 작품의 공동제작 관련한 이야기들이 조금씩 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수 만으로도 충분히 제작비 이상을 벌어들일 수 있는 구조였지만 내수 침체로 일본 역시 애니메이션 제작비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고 이를 해외와의 공동 투자로 풀어보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엔 생각하기 힘들었던 기회가 열렸다고 볼 수 있는 움직임입니다. 하지만 이에 적극 호응하는 분위기도 아닙니다. 일본 작품이면 무조건 된다는 공식이 통하지 않는 지금이기 때문이죠.

 예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한류 중 유일하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애니메이션 분야입니다. 대중 음악과 드라마, 영화 쪽에 비해 많이 떨어져있습니다. 하긴 애니메이션 쪽은 감히(?!) 한류를 언급할 수준 자체가 아직 안되어 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아직 아시아를 호령할 만한 TV애니메이션이 나오지 않았고 국내 시장도 여전히 밝지 않은 상황입니다. 유아용 애니메이션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왔지만 타겟의 협소함으로 인해 대표성을 부여하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가능성을 읽을 수는 있죠. 우리나라가 애니메이션을 잘 만들 수 있는 저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사례임엔 틀림없으니까요. 이제 대표작이 등장해야 할 시기입니다.

 작년 여름에 방송한 투니버스의 ‘안녕 자두야’ 와 올 초 방송한 ‘와라 편의점’은 국내에서 같이 편성된 유명 일본 애니메이션의 시청률을 누르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국내 시청률 측면에서만 본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하지만 아직 국내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안녕 자두야’의 경우는 몇몇 아시아권 국가에서 관심을 표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좋은 결과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영향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내부에서도 고민 중입니다. 사실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선 필름 판매만 가지고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TV애니메이션의 경우 판매 단가가 드라마나 영화에 비해 매우 싼 편입니다. 제작비 대비해서도 너무 싼 편입니다. 그렇기에 사업권을 같이 판매하거나 국내에서 제작한 상품을 같이 판매하는 등 부가사업이 따라주지 않는 한 해외를 통한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워집니다.

 TV애니메이션으로 한류에 합류하기 위한 외부적인 상황은 나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강국 일본이 주춤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신흥세력으로 속도를 내고 있는 중국의 경우 아직 그들만의 세계에 갇혀있습니다. 문호를 개방하지 않은 상태로 내수에 치중하고 있는 탓에 외국 작품과 겨룰만한 경쟁력 있는 수준의 작품을 구경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여기에 비해 우리나라는 이제 공부를 끝내고 실력을 발휘할 순간이 다가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일본 작품 위주로 돌아가던 국내 판이었지만 그를 통해서도 많은 노하우를 습득했습니다. 당장 투니버스만 하더라도 수많은 일본 작품들을 로컬라이징하여 국내 방송한 결과를 통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실력을 배양했습니다. 2007년부터 공동제작 및 공동 투자, 또 직접 제작한 작품들은 모두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냉장고 나라 코코몽’. ‘아기 공룡 둘리2’, ‘안녕 자두야’, ‘와라 편의점’ 등 모두 시청자들에게 사랑 받은 작품들이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해외에서의 성과, 사업적인 측면에서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대표작입니다.

 굳이 예를 들자면 일본의 ‘포켓몬스터’ 같은 작품과 국내의 ‘뿌까’ 같은 작품입니다. 뿌까의 경우 국내 작품이긴 하지만 디즈니가 함께 하면서 대표성이 좀 약해졌죠. 해외 배급을 위해 힘있는 외국 제작사와 손을 잡는 것은 필수입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요구를 다 들어주게 될 경우 오히려 외국 제작사만 배를 불리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죠. 이를 막기 위해선 먼저 국내에서 철저하게 검증을 거치고 사업성도 인정받은 뒤 보다 유리한 조건을 가져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하튼 이제 위에 예를 든 대표작이 등장해야 할 시기입니다. 우리가 머뭇거리는 사이 아마도 급성장한 중국에 선수를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바로 지금 대표선수를 만들어내게 되면 애니메이션 한류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기회는 길게 주어지지 않을 겁니다. 절대 놓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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