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은 아닌 이야기...(72)
자신감에 맛들이다
투니버스에서 인기리에 방송한 ‘따끈따끈 베이커리’를 볼 때마다 흐뭇한 미소를 짓곤 했다. 바로 성우 최재호 씨의 연기 때문이었다. 올해로 성우생활 만 10년 째인 그의 연기는 다른 이들과 달리 신선한 느낌이 물씬 담겨있다. 뭐랄까.. 10년이 되도 1년 같은 패기가 느껴진다고 할까? 지난 10년간 꾸준하게 연기를 해오며 나름의 연기력을 보여왔지만 특히나 올해 보여주는 연기가 이처럼 신선하리만큼 차이가 있는 이유가 있다. 바로 자신감이다.
데뷔 초부터 최재호 씨는 단아한 목소리 컬러로 인해 주목을 받았다. 흔히 말하는 주인공 타입 목소리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전속 성우 1년 차 때 최재호 씨의 목소리를 들은 선배 성우 손원일 씨가 ‘저 친구는 주인공 목소리군’하고 진단(?!)을 내릴 정도로 깔끔한 소리를 가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멋지게 생긴 캐릭터들을 많이 연기했지만, 웃기는 캐릭터 혹은 특이한 캐릭터들도 많이 소화했고, 흔히 말하는 멋진 주인공 쪽 연기보다는 다른 쪽에서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예를 들자면 ‘다다다’나 ‘마루코’에서 보여준 코믹 연기, ‘봉신연의’나 ‘행복한 세상의 족제비’에서 보여준 과묵(!!!)연기 등이다. 99년에 방송한 ‘기갑 경찰 메탈잭’에서 주인공 3인 중 한 명을 연기했고, 이후 ‘스타오션EX’에서도 주인공 연기를 선보였지만,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아있는 캐릭터들은 앞서 말했듯 코믹이나 과묵연기 쪽이었다.
2004년 GTO 마지막 녹음 때였다. 그 날은 주인공보다도 최재호 씨의 ‘기쿠치’가 더 많은 대사를 쏟아내는 날이었다. ‘기쿠치’는 굳이 분류하자면 주인공 타입에 가까운 소리가 어울리는 캐릭터! 당연히 최재호 씨도 목소리를 꾸미지 않고 자신의 톤으로 연기를 했다. 헌데 갑자기 대사량이 급증해서인지 녹음이 다소 버겁게 진행되었다. 녹음 후 뒤풀이자리에서 필자가 이유를 물어보았다. 솔직히 연습이 좀 부족했던 것이 아닐까 하고 지레짐작하고 물어본 것인데 돌아온 대답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긴장이 많이 돼 준비한 만큼 표현하지 못했다는 것’! 그때만해도 이미 만 8년 연기생활을 한 성우에게서 듣기 힘든 내용의 고백이었다. 물론 개인차가 있을 뿐 연기를 함에 있어서의 ‘긴장감’은 누구나 있다. MC경력 20년이 넘은 베테랑도 ‘on air’불빛만 보면 아직도 긴장한다고 고백한 사례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를 어떻게 극복 혹은 이용하느냐에 있다. 전혀 긴장감이 없으면 오히려 연기가 늘어질 우려도 있다. 아주 ‘적당한’긴장감이 돌 때 연기는 준비한 이상으로 나올 수 있다. 현대질병의 원인인 ‘스트레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스트레스가 아예 없으면 인간은 그냥 죽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적절한 스트레스가 있어야 활기차게 살 수 있고, 지나칠 경우에는 당연히 부작용이 나타난다고 하니 연기의 ‘긴장감’과 맥락이 같다고 할 수 있겠다. 여하튼 그 날 일로 인해 만 8년을 같이 일했지만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던 내면의 고민을 파악하게 됐다. 그리고 멋있는 역할보다는 코믹 쪽이 더 돋보였던 이유도 ‘긴장감’의 영향이 컸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코믹한 쪽이 부담이 적고 그렇기 때문에 긴장감이 덜 들기 마련이다. 결국 코믹 연기는 비교적 편안하게 연기했고 주인공 연기는 생각보다 부담을 더 많이 가지고 임했을 확률이 높은 것이다.
그 해 말에 녹음에 들어간 ‘가면라이더 드래건’의 ‘렌’역할을 최재호 씨에게 맡긴 것은 정면승부였다. 오인성 씨의 ‘신지’와 함께 투톱 남자주인공이면서 ‘신지’에 비해 다소 전형적인 주인공 타입이었기 때문이다. 작품 내용상 다소 어두운 면이 있긴 하지만 철없이 까부는 신지에 비하면 영락없는 주인공 타입이었다. ‘렌’을 통해 자신 있는 연기를 펼쳐달라는 주문을 했고, 상당히 비장하게 작품에 임한 최재호 씨는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연기가 돋보였다. 자신감이 다소 부족할 때는 은연 중에 다른 사람들의 연기스타일이 섞여나올 수 있다. 자기 표현에 자신감이 없으니 유사한 다른 사람들의 스타일을 자신도 모르게 따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는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순간순간 어색한 느낌을 주곤 한다. 하지만 ‘렌’은 그런 것이 없었다. 비로소 최재호 씨 자신만의 표현방식이 자리를 잡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이후 몬스터의 ‘스쿠’형사 역을 통해 다른 면을 보여준다. ‘렌’을 통해 받은 좋은 인상 때문이었는지 상당히 비중이 있는 이 캐릭터 담당 성우를 처음부터 최재호 씨로 찍어놓고 있었다. 스쿠 형사가 등장하는 첫 녹음에서 최재호 씨는 디테일한 면에서 필자가 생각한 것과는 차이가 있는 연기를 보였다. 헌데 녹음이 끝나고 생각해보니 필자가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한 단계 더 생각하고 나온 연기였다. 자신만의 표현에 이어 생각의 깊이를 보여준 것이다.
최재호 씨의 연기에 자신감을 완벽하게 부여하는 화룡점정은 바로 ‘사무라이 참프루’였다. 투니버스 출신 전 남자 성우들을 대상으로 한 오디션에서 ‘무겐’역을 꿰어 찬 것이다. 오디션은 주어진 대사를 ‘녹음’한 뒤 수 차례 검토를 거치며 진행됐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최재호 씨의 무겐 연기 점수가 올라가고 있었다. 과감한 연기 변신도 돋보였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열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들 열심히 오디션에 임했지만 배역을 향한 최재호 씨의 갈망이 더 컸던 것 같고, 이로 인해 열정의 무게가 더해졌던 것 같다. 자기 스타일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연장선상에서 오디션 합격은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연기가 물이 올랐음을 증명해주는 역할을 해준 셈이 됐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획득한 기회를 멋지게 활용했음은 시청하신 분들이 더 잘 알 듯 싶다.
이후 배틀짱 녹음에서 만난 최재호 씨는 표정이 달라 보였다. 항상 녹음이 끝나면 자신의 연기가 어땠느냐며 모니터를 요청하곤 했었는데, 그 순간의 표정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이전까지는 선생님을 대하는 학생이 연상되는 표정을 짓곤 했었는데, 이 때는 싱글거리며 물어온 것이다. 그 표정은 자신의 연기를 ‘즐기는‘표정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필자의 물음에 ‘연기가 지금 너무 재밌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자신이 생각한대로 자신의 매력을 담아 망설이지 않고 표현하는 연기! 바로 그 희열을 느끼는 모습이었다.
대체로 필자가 선발하고 성장을 보아온 성우들은 최재호 씨와 유사한 단계를 보인다. 다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시간은 현격한 개인차가 존재한다. 조금 예전의 시각으로 본다면 10년은 해야 제대로 된 성우가 된다고 했으니 최재호 씨의 경우가 FM일 수도 있다. 애니메이션이 주류인 요즘 시각으로 보면 다소 늦었다고 할 수도 있고.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연기에 맛을 들인 최재호 씨가 오랫동안 그 맛을 유지해주는 것이 아닐까?
*덧붙여 - 솔직히 같이 일하는 누군가에 대해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그 사람을 다시 볼 일이 없다면 모를까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프라이버시도 당연히 지켜야하면서, 재미도 있어야 하니 외려 머리가 아프다. "내가 언제 이랬다고?" 이런 소리 나와봐라. 정말 쥐구멍 찾아야 한다. 하지만! 바로 그 주인공이 자신도 잘 읽었다고 피드백을 주면... 다른 글에 비해 더 보람이 있는 장점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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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X가지들이 욜라 열받게 하잖아~!" 그 한마디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훗..^_^
따따베의 강기형님도 최고~ +_+)b
재호 님에게 그런 면도 있으셨군요.
사업도 하시고, 이민생활도 하시고, 다채로운 경력이 연기에 녹아있으시겠죠?
그야말로 완벽하게 광기로 뭉친 캐릭터였는데 재미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