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은 아닌 이야기...(79)
얼마 전 가수 배슬기 양이 부른 ‘꿈은 나에게’ 노랫말을 만들면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어라? 이 노랫말이 작사한지 만 10년째 접어들면서 처음 만드는 곡이네?’ 하고. 열성 투니버스 시청자분 들은 이의를 제기하실지도 모르겠다. 연초에 방송한 블리치 노래들은 뭐냐고. 저 사람이 나이가 들더니 슬슬 하드 디스크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솔직히.. 하드 디스크는 예전만 못한 것 같은데..(삐질) 블리치 노래들은 시점이 다르다. 작년 12월에 제작을 끝냈기에 필자에겐 작년 노래들이다. 때문에 따.따.베.2기 여는 노래가 10년 차 마수걸이 노랫말이 된다. 10년이라.. 그 동안 ‘전문가’ 소리를 들으며 인터뷰 요청도 받는 위치(?!)에 와 있다. 그 동안 어떤 과정을 거치고 있었는지 오늘 한 번 되돌아본다.
10년 전이면 애니메이션 주제가는 대략 두 개의 범주로 묶을 수 있었다. 하나는 지상파에서 주로 했던 창작 주제가들인데 대부분 동요적인 분위기를 기본으로 하고 있어서 ‘유치하다’라는 말을 많이 듣곤 했다. 또 하나는 일본 판 노래를 가사만 바꾸어 그대로 쓰는 경우인데 이 때는 특히 ‘가사’가 문제가 되었다. 번역체가 그대로 남아있음은 물론이거니와 일본 판 노래의 멜로디에 맞게 글자수가 조정되어있지도 않아서 무언가 어색함을 극복할 수 없는 수준을 자주 보였다. 이유는? 아마도 전문적인 작사가의 손길을 거치지 않고, 대사 번역작가의 초벌 번역을 토대로 성의 없이 노래로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의 초반 작업들은 대부분 일본 판 노래에 가사를 바꾸는 것이었다. 이 당시 필자는 어째서 전문가의 손길을 구하지 않고 직접 뛰어들었을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아는 작사가가 없다. 둘째, 당시 음악 쪽에 책정된 예산은 정말 적었다. 아는 사람도 없고, 제작비도 없고, 어쩌겠나? 몸으로 때워야지..!!! 작사 경험? 全無!! 나이 30의 완전 초짜 작사가는 그렇게 다소 초라한 운명처럼 출발했다.
출발선에 섰을 때 필자가 가지고 있던 무기는? 일단 대략 10년쯤 피아노를 두들긴 경험이 있고, 작은 규모의 군악대에서 군생활을 하기도 했다. 음악의 문외한은 아니었던 것. 그리고 대학 시절 방송국 활동과 지상파 오락 프로그램에서의 구성작가 생활을 통해 나름 ‘글’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그 글은 모두 ‘멘트’였고, 솔직히 어릴 때부터 ‘시’적인 감각은 필자와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후일 생각해보니 가장 큰 무기는 이른바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이어지는 대중가요 르네상스 시대를 온몸으로 통과한 것이었다. 그 기간 동안 정말 다양한 장르와 훌륭한 가수들, 능력 있는 작곡가들이 등장해 메마른 필자의 감성에 단비를 흠뻑 뿌려주었다. 이들의 새 앨범(당시는 LP였다)이 나오는 족족 구입해서 판이 튀도록 감상하고, 목이 메이도록 따라 부르는 당시 너무나 자연스러운 과정을 통해 필자에게 축적된 무기가 있었다. 그것은 우리나라 정서의 노랫말 진행에 대한 ‘감’이었다. 바로 이 ‘감’이 있었기에 번역체 노래가사를 우리 정서에 맞게 수정하고, 때로는 주제만 살리고 아예 새로 만드는 작업이 가능했다. 거기에 악기를 다뤄본 경험은 멜로디를 정확히 지키는 글자수를 챙기는데 도움을 주었고. 정서적인 면과 멜로디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당시엔 나름의 파급효과가 있었다. 이를 거꾸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주위에선 노랫말에 정성을 쏟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된다. 물론 지상파에서도 명곡으로 칭할만한 곡이 있었고, 투니버스에서도 WE1집에 수록된 초기 창작곡 몇 곡은 매우 훌륭했다. 하지만! 평균적으로 본다면… 당시만 해도 애니메이션 주제가는 저예산 및 무관심의 산물이었다.
세기말인 1999년! 필자의 무허가 초짜 작사가 생활이 나름 자리를 잡을까 말까 애매한 시기에 투니버스 주제가 가사 수준을 확 높여 준 분이 있다. 작사가 송재원 씨! 작곡가 이창희 씨와 콤비를 이루어 ‘오! 나의 여신님’ 주제가를 비롯해 걸작 ‘Alone(카우보이 비밥)’과 ‘야야야(그 남자 그 여자)’등 이전과 수준이 다른 노랫말을 선보인다. 이분이야말로 대중가요 작업을 하던 전문 작사가였다. 전문가의 잘 만든 노랫말을 접하고 한동안 필자는 슬럼프에 빠졌다. 도무지 스스로 만드는 노랫말이 성에 차지 않았던 것. 물론 송재원 씨가 작사를 한 작품들의 담당PD는 필자였다. PD로서는 기뻐 날뛰는 한편, 작사가로서는 슬럼프에 푹 빠지는 묘한 상황에 처한 것. 슬럼프는 1년 조금 넘게 지속된 듯 하다.
슬럼프 탈출의 신호탄은 2001년이었다. ‘괴짜가족’ 노랫말을 지으면서 분위기 전환이 이루어진 것. 당시 노래 녹음 프로듀서를 맡아주었던 작곡가 분이 노랫말을 칭찬해주면서 한동안 죽어있던 ‘기’가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사이버 포뮬라 Sin’의 노랫말 평이 좋게 나오면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궤도에 진입했다. 이후 2002년, 처음으로 창작곡 노랫말 작업을 한 ‘미소의 세상’ 여는 노래를 시작으로 이창희 씨와 지속적인 콤비 플레이가 이루어졌고, WE2와 WE3에 수록된 많은 곡들을 만들어냈다. 사실 실질적으로 작사가다운 성과를 내기 시작한 것은 2002년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때부터 일본 판 개사 작업이 아닌 본격적인 창작곡 노랫말 작업을 시작했으니까! 이후 ‘달빛천사’ 노랫말 작업을 한 2004년은 가히 절정기라고 할만한 시기였던 것 같다. 지금? 지금은 절정 유지기! (하하)
처음 작업할 때와 지금의 차이점이라면, 연륜이 쌓이면서 강박관념을 떨쳐버린 것이 있겠다. 노랫말 수준을 무조건 높인다는 차원에서 기존의 애니메이션 주제가 분위기보다는 일반 가요의 분위기를 풍기게 하려고 의도하곤 했었는데, 요즘은 상황에 따라 느낌에 따라 대처하고 있다. 때로는 아주 노골적으로 작품 내용을 드러내면서 작업을 하기도 한다. 따끈따끈 베이커리 1기 주제가들이나 최근 블리치 주제가들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아직도 지키는 원칙이 있는데 노랫말에 애니메이션 ‘제목’은 넣지 않는다. ‘파워레인저’는 들어가지 않았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 경우는 작곡가 분이 미리 그렇게 하자고 한 것! 참고로 말씀 드리면 필자의 가사에 종종 나오는 ‘나나나~’라든지 ‘슈비두바’하는 추임새(!!)들은 모두 작곡가 분들이 만든 것이다. (^^) 아마 이 원칙은 유아용 노랫말을 만들 때 깨지 않을까 싶다.
필자의 경험으로 보면 작사작업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잘 할 수는 없는 일인 듯 하다. ‘글’을 쓰는 작업이지만 음악을 많이 사랑해야 하고, 음감이 있어야 하고,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위해선 역시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해야 할 테니까 말이다.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지만 계속 노랫말을 만들고 싶다. 좋은 노래와 노랫말로 애니메이션을 사랑하시는 분들과 함께 호흡하고 싶다.





![하얀마음 백구 박스세트 [파격가 할인]](http://image.aladdin.co.kr/coveretc/dvd/coveroff/3382430375_1.jpg)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