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디의 무책임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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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悲歌) by 무디

이 글은 절친한 사이였던 엔지니어 나상준 형이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 뒤 작성한 글이다. 눈물을 거두고 보니 너무 개인적이라 뉴타입에 보내지 않고 새로운 글을 작성했다. 하지만 개인적인 공간에는 이 글을 올리려 마음을 먹고 이 글을 '비밀09'파일로 남겨두었다. 그래서 뉴타입에 9번 째로 실린 글의 파일명은 '비밀10'이다...
이제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상준이 형은 마음 속에 남아있다. WE1집을 준비할 때도 옆에서 정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미처 발매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떴고... 형이 만약 WE3를 보면... 어떤 말을 할까 궁금하다...


비밀은 아닌 이야기... (9) - 미발표 글

...언젠가 술 한 잔 마시며 말했습니다. 제게 가장 큰 적은 제 안에 숨어있는 나태와 자만이라고. 이제... 한 동안 그 녀석들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 말이죠.

비가(悲歌)

 9월 6일... 조금 늦장을 부리던 아침... 살며시 비가 내렸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회사 앞의 지하철역을 나서자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잠시 세찬 비가 내리더군요. 평생 잊지 못할 날일 것이 될 거예요. 불과 전 날까지 웃음을 나눴던 동료이며 의형이 불의의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난 날이니까. 형과는 작년부터 PD와 엔지니어로 호흡을 맞추며 ‘버블검 크라이시스(TV시리즈)’를 시작으로 ‘그 남자 그 여자’, ‘로도스도 전기’, ‘은장기공 오디안’, ‘괴짜가족’, ‘다!다!다!’ 등의 작품을 동고동락하며 만들었죠. 나와는 가장 늦게 호흡을 맞춘 엔지니어지만 가장 호흡이 잘 맞았던 엔지니어이기에 지금의 아쉬움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가 없군요. 같이 할 미래가 사라졌기에.. 그저 과거로 남을 기억의 편린만이 뒤죽박죽 되어 떠오르고 있는 지금... 고인이 된 형을 추억하며 힘든 글을 시작합니다.

 참 죽이 잘 맞았죠? 서로 자라난 환경도 비슷했고, 혈액형도 같았고, 음악을 사랑했고, 만화도 좋아했잖아요? 아! 무엇보다 우리를 하나로 만든 것이 있었죠. 작업을 함에 있어 연기자(성우)를 중요시했던 서로의 관점 말입니다. 그래요.. 우리가 조금 더 고생하더라도 좋은 작품을 위해선 최전방의 연기자들을 편하게 해야 한다며 의기투합했죠. 프로 경력이야 90년부터 음악녹음을 시작한 형이 나보다 많지만, 작년에 처음 같이 더빙을 할 때, 애니메이션 더빙은 그래도 내가 한참 선배였죠? 언젠가 형이 나한테 많이 배웠다며 고마움을 말했을 때... 저 또한 배운 것이 많다고 한 거 아시죠? 주제가를 녹음할 때였어요. 부스 안을 점검하던 형이 마이크 뒤에 의자를 가져다 놓더군요. ‘노래하는 게 상당히 중노동이잖아? 이렇게 의자를 가까이 두고 사이사이 모니터를 위해 잠시 녹음을 멈출 때 가수가 앉아서 쉴 수 있게 해줘야지’ 그 작지만 세심한 배려에 굉장히 감명을 받았어요. 그런 뒤 올해 ‘다!다!다!’를 녹음할 때 내가 말했죠. ‘주인공 성우가 임신 중이라 몸이 무겁잖아. 헌데 대사가 많으니 멀리 떨어져 있는 의자로 가기가 힘들 거야. 마이크 바로 옆에 의자를 놓을까?’ 녹음 첫 날... 조금 일찍 녹음실에 올라 온 내가 의자를 찾을 때 벌써 형이 가져다 놓은 의자를 봤죠. 후후.. 정말 못 말리는 사람이라니깐! 그리고 바로 그 날. 한 남자 성우는 전 날 녹음하다 목을 혹사해서 소리가 갈라져 있었고, 한 여자 성우는 감기에 걸려서 콱 막힌 소리를 내고 있었죠. 급한 방송 일정 탓에 눈물을 삼키며 그대로 녹음을 했고, 편집 당일까지 첫 녹음이 안 좋게 나올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는 나한테 형이 건네 준 테입은 참 놀라웠습니다. 솔직히 좋지 않게 녹음된 두 성우의 소리들을 모두 따로 손을 봐서 그야말로 거의 멀쩡하게 바꿔 놨죠. ‘도대체 믹싱을 몇 시간이나 한 거야?’라며 좋아서 따지는 나에게 ‘좀 걸렸다’하며 미소짓던 그 때. 참 든든했습니다. 이 사람이 있다면 앞으로 두려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 전부터도 그랬지만, 그 뒤로는 정말 다른 사람들이 보면 시샘을 할 정도로 붙어 다녔죠. 녹음 하나 하면 전속 성우들과 술 한 잔 나누며 뒤풀이하던 거 참 좋았어요. IMF이후에 그런 자리가 참 귀했는데 형이 먼저 시작했죠. PD인 내가 뒤늦게 끼어 들었고. 아직 자기 목소리를 찾지 못한 전속 성우들에게 좋은 얘기해주며 이끌어주던 거 참 고마웠습니다. 그런 자리를 토대로 정말 분위기 좋은 녹음을 했고, 내가 그랬죠? 내 성인 ‘신’자와 형의 성인 ‘나’자를 합쳐서 우리가 하는 녹음은 ‘신나’는 녹음이라고 말이에요.

 아 그리고 한 달쯤 전이던가? 그 날도 녹음하고 같이 술 마시다가 나한테 나만 알고 있으라며 했던 말. 새롭게 작곡하는 주제가가 아닌 일본 원곡을 카피해서 만들었던 곡들에 대해서였죠. 나도 형이 소개해 준 작곡가에게 의뢰해서 몇 곡을 카피로 제작했는데 언젠가 감탄하며 물었죠. 솔직히 작곡이 아닌 카피작업이라 제작비를 많이 주지 못하는데 사운드가 그에 비해 너무 훌륭하다고. 거의 1년이 되도록 얘기해주지 않다가 그 때 말해줬죠. 사실은 형이 작곡가의 작업실에 가서 작곡가와 함께 직접 반주를 만들고 있었다고. 그래요. 어쩐지. 형이 직접 콘솔을 잡고 제작을 하고 있었던 거군요. 그러기에 그런 사운드가 나와줬겠죠. 그리고 솔직히 그 제작비에 따로 녹음 엔지니어까지 붙어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게 사실이니까요. 그런 일을 한 이유인즉 자신의 작품의 퀄리티를 높이고자 하는 의욕과 함께 원래 음악 엔지니어로 출발했던 형이 음악과 멀어지며 음악 녹음에 대한 감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새벽이건 주말이건 상관 않고 작업을 했다고. 심지어는 그 작곡가가 맡고 있는 모 드라마의 음악도 연습을 위해 믹싱을 하고 있었다고 했죠. 남들 같으면 자랑을 하고도 남을 일을 형은 ‘쪽팔려서’ 말하지 말라고 했죠.

 뭐 이제 내가 다 털어놓은들 아무 문제 없겠죠? 올 초에 내가 잠시 슬럼프에 빠졌던 거 기억나요? 뭔가 더 나은 모습을 보여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가 좀 헤맸잖아요? 그러다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며 다짐하는 나를 격려해줬죠. 그리고 내가 나중에 말했을 거예요. 초심으로 돌아가 녹음을 준비하는 과정에 형이 준비하던 방식을 따라했다고. 녹음 대본에 캐릭터마다 일일이 담당 성우 이름을 적고 정신 없이 돌아가는 더빙에 임했던 걸 알고 또 다시 감명을 받곤 나도 따라했죠. 그리고 한 녹음은 참 재밌었어요. 서로 다음에 등장할 성우의 이름을 말해 주며 순간순간 대처하던 그 때... 후후 그래요. 그게 환상의 콤비지 뭐가 이 바닥에서 환상의 콤비겠어요? 형한텐 말하지 않았지만 얼마 전에 나름의 목표를 하나 세웠어요. 그리고 그것을 위해 형을 무척이나 괴롭히려고 마음 단단히 먹고 있었는데 참 허망하군요.

 한참을 오로지 전진만 해오다가... 갑자기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잠시 멈췄습니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의 출발이 아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군요. 아아 걱정일랑 말아요. 형이 오기 전부터 나와 목숨 걸고 일했던 선배와 동료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무슨 걱정? 아참. 형이 그렇게 하고 싶어했고, 마침내 녹음을 한 유작이 있었군요. 녹음은 완료했지만 아직 후반작업이 끝나지 않았죠. 그래요. 그건 정말 걱정되고 안타깝겠죠. 그래도 남은 사람들을 믿고 편히 쉬세요. 언젠가 나한테 그랬죠? 나름대로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형은 믿음이 있기에 지금 당장 세상을 뜨더라도 후회는 없다고 말예요. 유작이 돼버린 작품을 끝내지 못한 아쉬움은 있더라도 진짜 후회는 없는 거죠? 난 그렇게 믿고 있겠습니다. 복잡한 이 세상을 떠나 다음 세상에서 부디 편안하시길... <2001. 9. 6>

※ 故 나상준 엔지니어가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듣고 바로 영안실로 달려가지 못하고 점심시간과 오후 4시에 잡힌 미팅을 진행하는 사이 이 글을 썼습니다. 처음 생각은 시간이 지나고 잊혀질 형의 존재를 잡지에 발표하려고 했죠. 하지만 영안실을 다녀오고 나서의 생각은 너무나 개인적이지 않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해서 이 글은 한동안 폴더 안에 저장하고 다른 기회가 생기면 그 때 세상에 내놓을 작정입니다. 잡지에도 물론 형의 얘기를 다시 쓸 것이지만 평소 그 잡지에 연재하던 제 글의 성격과 어울리도록 다른 이야기를 쓸 겁니다. 내가 제일 좋아한 동료이자 형이었고 술친구였던 故 나상준 형의 명복을 빕니다. <2001. 9. 7>

덧글

  • 박정식 2005/08/12 21:45 # 삭제 답글

    아..이글을 이제서야 읽고 맘속에서 눈물이 흐르는군요...

    새벽까지 도와주던..작곡가 ..바로 저입니다..

    오늘날 절있게 만들어준 장본인 나상준씨..정말 고맙습니다..

    저위에 좋은곳에서 절지켜보며..넌 아직 멀었어 하면서 해맑게

    웃는모습이 떠오릅니다.......
  • 2005/08/13 00:4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상준친구 2010/08/31 14:12 # 삭제 답글

    상준이 고등학교 친구입니다. 3학년때 같은 반인 우리들.. 참 징하게도 같이 놀았었지요.

    상준이 가던 1주일 전에.. 갑자기 모였다가 상준이한테 전화했더니 여자 만난다고 못 온다고 해서,
    죽이느니 살리느니 했었는데.. 1주일 후 그렇게 슬픈 연락을 받았더랬습니다.

    매년 9월 첫째 주 토요일은 벽제에 상준이 보러가는 날이라.. 오늘 문득 구글링을 해봤더니,
    여기에서 상준이의 자취를 찾게 되었네요.

    덕분에 소중한 추억에 또 잠겨봅니다. 고맙습니다.....
  • 무디 2010/09/02 15:46 #

    그러셨군요. 벌써 시간이 참... 무심할 지경으로 흘렀습니다.
    얼마 전에도 옛날 일 이야기하며 상준 형 이름이 나왔었는데...
    기일이 다가왔군요.
    10년이 되는 내년엔 저도 가봐야겠습니다.
  • 상준친구 2010/09/06 19:14 # 삭제

    혹시 가보시려면..

    "용미리 추모의집"으로 검색하시고..
    3층 78호 맨윗줄 가운데 약간 창문쪽에서 상준이 찾을 수 있습니다.

    여전히 웃으면서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더군요.
  • 무디 2010/09/10 17:10 #

    그렇군요. 내년엔 지인과 함께 꼭 방문할 겁니다.
    알려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 상준친구2 2018/09/30 11:08 # 삭제 답글

    저도 상준이 고등학교 동창입니다.
    보고싶은 상준이의 흔적을 이곳에서 보네요.
    늦게나마 찾게 되어 반갑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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