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7월 31일
옛날 이야기
비밀은 아닌 이야기... (25)
이번 호에는 새해맞이 옛날이야기 모음을 준비했습니다. 어머니가 한 때 성우셨고, 아버지가 극작가로 특히 라디오 드라마 극본을 많이 쓰신 탓에 어릴 적부터 성우들과 관련된 일화들이 조금 있었습니다. 새해 특집으로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옛날 이야기
<성우의 생명은?>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에 어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어느날 외출을 하고 돌아오신 어머니는 성우 후배인 박영남 선생님을 만나고 왔다고 하시며 다음과 같은 말을 하셨다. ‘영남이가 너무 남자아이 목소리만 하다 보니까 성인 목소리를 못 내겠다며 하소연하던데’라고 말이다. 한가지 스타일의 연기만 계속하다 보면 발생할 수 있는 그런 일이다. 오래 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고, 어쨌든 당사자에게는 고민이 될만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헌데 이 이야기를 들은 때가 아마 1979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결국… 그로부터 20년이 넘게 박영남 선생님은 계속 남자아이 목소리를 연기해오신 것이다. 가장 최근에는 짱구 목소리로 어린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을 정도이니 지금도 전성기의 연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0여년을 한결같이 만화영화의 남자아이 목소리를 지켜온 박영남 선생님. 짱구 목소리를 듣고있노라면 이 분의 성우활동은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듯하다.
<천의 목소리>
필자가 어렸을 때는 외화가 참 인기가 많았다. 어린 필자 또한 당시의 국내 드라마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키스장면이 등장하는 외화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또한 외화 주인공들의 목소리를 연기하는 성우들도 선망의 대상에 빠지지 않았다. 가장 좋아했던 성우는 장유진 선생님. 당시 웬만한 여자 주인공은 모두 장유진 선생님이 도맡다시피 할 정도로 외화의 단골 주인공이었다. 특히나 엘리자베스 테일러 목소리를 연기할 때는 너무나 잘 어울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외화 주인공일 때는 정말 고고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구사하시지만 만화영화로 가면 ‘똘똘이 스머프’같은 귀엽고 재밌는 역할도 날씬하게 소화해내는 분이다.
헌데 장유진 선생님이 연기한 캐릭터 중 필자가 초등학교 때부터 들었으면서도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장유진 선생님이 연기한 사실을 몰랐던 캐릭터가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필자는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장유진 선생님 댁에 놀러 간 일이 있었다. 필자의 가족 외에 다른 가족들도 놀러 와 있었다. 필자도 아이였지만 좌우지간 애들이 좀 모여있는 상황이었는데, 다른 집 아이들이 장유진 선생님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재밌는 목소리를 들려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잠시 빼시던 장 선생님은 이내 재밌는 목소리를 들려주셨는데 이를 옆에서 들은 필자는 쇼크를 먹고 말았다.
그 목소리는… 그 목소리는… 어릴 적부터 들었던 도널드 덕의 목소리가 아닌가? 무척이나 목에 힘을 주는, 목을 갈아서 내는 소리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그 도널드 덕의 목소리가 미녀배우 목소리 전담의 장유진 선생님일 줄은 그때까지 생각도 못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몸으로 느낀 사실… 아! 성우는 정말로 천의 목소리를 가졌구나!
<선배는 무섭다>
필자가 더빙PD를 하게 되면서 여러 성우분 들을 만나게 됐고, 여러분들로부터 부모님과 관련한 이야기를 듣곤 했는데 가장 많이 듣는 주제가 하나 있다. 고참 남자 성우분 들이 공통적으로 많이 하시는 말씀… ‘너 어렸을 때 집에 갔었는데 기억하니?’이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필자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항상 똑같다. ‘(빙긋 웃으며)그렇다면 선생님도 제가 싫어했던 불청객 중 한 명이셨군요!’
필자의 아버지가 술을 좋아하신다. 거기에 더해 늦은 밤에 아는 사람들 집에 끌고 와서 새벽까지 마시는 것을 또 좋아하신다. 이 때 주로 끌려온 손님들이 대부분 성우분 들이셨다. 그리고 어린 필자의 눈에는 비록 아버지에게 끌려오긴 했지만 밤 늦게 찾아오는 손님들이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그래서 고참 성우분 들의 추억어린 질문에 얼굴은 빙긋 웃으면서도 말에는 가시 하나 꽂고 답하곤 했다.
그런데 노민 선생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는 위와 조금 달랐다. 어느날 노민 선생님은 다른 성우 한 분과 함께 아버지의 손에 붙들려 택시를 타고 필자의 집(정확하게는 아버지의 집이겠죠? ^^)으로 향하던 중 갑자기 필자의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다고 한다. 여기서 잠시! 필자의 어머니가 노민 선생님에게는 6년쯤 선배가 된다. 그리고 그 얼굴은 당연히 화난 얼굴이었다. 잠시 공포에 사로잡힌 노민 선생님은 택시가 잠시 정차한 틈을 타 문을 열고 줄행랑을 치셨다고 한다. 필자는 이 이야기를 통해 확실히 성우 세계의 선후배관계는 매우 질서가 정연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 작가선생님보다는 성우 선배가 더 무섭다… 니까!
<히든 카드 김 기사!>
이번엔 성우 신성호 선생님의 회고. 신성호 선생님이 성우 막내이던 시절의 이야기다. 당시 성우 막내에게 주어진 일 중 하나가 작가 선생님의 원고를 잽싸게 인쇄소에 넘기는 것이었다고 한다. 아주 급할 때는 작가가 원고지 한 장씩 완성할 때마다 그걸 들고 계속 인쇄소를 오갔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늘 성실하게 인쇄소를 뛰어다니던 신성호 선생님을 눈 여겨 본 당시의 작가인 아버지가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자네… 배역이 뭔가?’ ‘저요? 김 기사인데요…’ ‘그래? 김 기사! 알았어.’ 이와 같은 대화가 오고 간 후… 거의 엑스트라에 불과했던 신성호 선생님의 배역인 김 기사가 갑자기 대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조금씩 늘어난 대사는 어느덧 거의 주인공에 육박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신성호 선생님은 이에 숨이 차기 시작했다고 한다. 숨이 찼던 가장 큰 이유는 막내인 탓에 인쇄소 대본 맡기기 등 허드렛일이 많아 연습할 시간이 없었던 것!
마침내 견디다 못한 신성호 선생님이 아버지에게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예쁘게 봐주셔서 역할을 크게 해주신 것은 고맙지만 너무 힘이 든다고! 헌데 아버지는 ‘아니야! 원래 그 김 기사가 그런 복선이 있었어! 애초에 그렇게 설정하고 있었던 거라고!’라고 박박 우기셨다고 한다. 물론 신성호 선생님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고 한다(^^). 헌데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뒤 필자가 아버지에게 다시 여쭤봤더니 위와 똑 같은 말씀을 하시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김 기사는… 정말로 히든 카드였다는? ^^
이번 호에는 새해맞이 옛날이야기 모음을 준비했습니다. 어머니가 한 때 성우셨고, 아버지가 극작가로 특히 라디오 드라마 극본을 많이 쓰신 탓에 어릴 적부터 성우들과 관련된 일화들이 조금 있었습니다. 새해 특집으로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옛날 이야기
<성우의 생명은?>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에 어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어느날 외출을 하고 돌아오신 어머니는 성우 후배인 박영남 선생님을 만나고 왔다고 하시며 다음과 같은 말을 하셨다. ‘영남이가 너무 남자아이 목소리만 하다 보니까 성인 목소리를 못 내겠다며 하소연하던데’라고 말이다. 한가지 스타일의 연기만 계속하다 보면 발생할 수 있는 그런 일이다. 오래 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고, 어쨌든 당사자에게는 고민이 될만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헌데 이 이야기를 들은 때가 아마 1979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결국… 그로부터 20년이 넘게 박영남 선생님은 계속 남자아이 목소리를 연기해오신 것이다. 가장 최근에는 짱구 목소리로 어린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을 정도이니 지금도 전성기의 연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0여년을 한결같이 만화영화의 남자아이 목소리를 지켜온 박영남 선생님. 짱구 목소리를 듣고있노라면 이 분의 성우활동은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듯하다.
<천의 목소리>
필자가 어렸을 때는 외화가 참 인기가 많았다. 어린 필자 또한 당시의 국내 드라마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키스장면이 등장하는 외화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또한 외화 주인공들의 목소리를 연기하는 성우들도 선망의 대상에 빠지지 않았다. 가장 좋아했던 성우는 장유진 선생님. 당시 웬만한 여자 주인공은 모두 장유진 선생님이 도맡다시피 할 정도로 외화의 단골 주인공이었다. 특히나 엘리자베스 테일러 목소리를 연기할 때는 너무나 잘 어울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외화 주인공일 때는 정말 고고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구사하시지만 만화영화로 가면 ‘똘똘이 스머프’같은 귀엽고 재밌는 역할도 날씬하게 소화해내는 분이다.
헌데 장유진 선생님이 연기한 캐릭터 중 필자가 초등학교 때부터 들었으면서도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장유진 선생님이 연기한 사실을 몰랐던 캐릭터가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필자는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장유진 선생님 댁에 놀러 간 일이 있었다. 필자의 가족 외에 다른 가족들도 놀러 와 있었다. 필자도 아이였지만 좌우지간 애들이 좀 모여있는 상황이었는데, 다른 집 아이들이 장유진 선생님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재밌는 목소리를 들려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잠시 빼시던 장 선생님은 이내 재밌는 목소리를 들려주셨는데 이를 옆에서 들은 필자는 쇼크를 먹고 말았다.
그 목소리는… 그 목소리는… 어릴 적부터 들었던 도널드 덕의 목소리가 아닌가? 무척이나 목에 힘을 주는, 목을 갈아서 내는 소리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그 도널드 덕의 목소리가 미녀배우 목소리 전담의 장유진 선생님일 줄은 그때까지 생각도 못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몸으로 느낀 사실… 아! 성우는 정말로 천의 목소리를 가졌구나!
<선배는 무섭다>
필자가 더빙PD를 하게 되면서 여러 성우분 들을 만나게 됐고, 여러분들로부터 부모님과 관련한 이야기를 듣곤 했는데 가장 많이 듣는 주제가 하나 있다. 고참 남자 성우분 들이 공통적으로 많이 하시는 말씀… ‘너 어렸을 때 집에 갔었는데 기억하니?’이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필자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항상 똑같다. ‘(빙긋 웃으며)그렇다면 선생님도 제가 싫어했던 불청객 중 한 명이셨군요!’
필자의 아버지가 술을 좋아하신다. 거기에 더해 늦은 밤에 아는 사람들 집에 끌고 와서 새벽까지 마시는 것을 또 좋아하신다. 이 때 주로 끌려온 손님들이 대부분 성우분 들이셨다. 그리고 어린 필자의 눈에는 비록 아버지에게 끌려오긴 했지만 밤 늦게 찾아오는 손님들이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그래서 고참 성우분 들의 추억어린 질문에 얼굴은 빙긋 웃으면서도 말에는 가시 하나 꽂고 답하곤 했다.
그런데 노민 선생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는 위와 조금 달랐다. 어느날 노민 선생님은 다른 성우 한 분과 함께 아버지의 손에 붙들려 택시를 타고 필자의 집(정확하게는 아버지의 집이겠죠? ^^)으로 향하던 중 갑자기 필자의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다고 한다. 여기서 잠시! 필자의 어머니가 노민 선생님에게는 6년쯤 선배가 된다. 그리고 그 얼굴은 당연히 화난 얼굴이었다. 잠시 공포에 사로잡힌 노민 선생님은 택시가 잠시 정차한 틈을 타 문을 열고 줄행랑을 치셨다고 한다. 필자는 이 이야기를 통해 확실히 성우 세계의 선후배관계는 매우 질서가 정연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 작가선생님보다는 성우 선배가 더 무섭다… 니까!
<히든 카드 김 기사!>
이번엔 성우 신성호 선생님의 회고. 신성호 선생님이 성우 막내이던 시절의 이야기다. 당시 성우 막내에게 주어진 일 중 하나가 작가 선생님의 원고를 잽싸게 인쇄소에 넘기는 것이었다고 한다. 아주 급할 때는 작가가 원고지 한 장씩 완성할 때마다 그걸 들고 계속 인쇄소를 오갔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늘 성실하게 인쇄소를 뛰어다니던 신성호 선생님을 눈 여겨 본 당시의 작가인 아버지가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자네… 배역이 뭔가?’ ‘저요? 김 기사인데요…’ ‘그래? 김 기사! 알았어.’ 이와 같은 대화가 오고 간 후… 거의 엑스트라에 불과했던 신성호 선생님의 배역인 김 기사가 갑자기 대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조금씩 늘어난 대사는 어느덧 거의 주인공에 육박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신성호 선생님은 이에 숨이 차기 시작했다고 한다. 숨이 찼던 가장 큰 이유는 막내인 탓에 인쇄소 대본 맡기기 등 허드렛일이 많아 연습할 시간이 없었던 것!
마침내 견디다 못한 신성호 선생님이 아버지에게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예쁘게 봐주셔서 역할을 크게 해주신 것은 고맙지만 너무 힘이 든다고! 헌데 아버지는 ‘아니야! 원래 그 김 기사가 그런 복선이 있었어! 애초에 그렇게 설정하고 있었던 거라고!’라고 박박 우기셨다고 한다. 물론 신성호 선생님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고 한다(^^). 헌데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뒤 필자가 아버지에게 다시 여쭤봤더니 위와 똑 같은 말씀을 하시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김 기사는… 정말로 히든 카드였다는? ^^
# by | 2005/07/31 16:17 | 뉴타입 컬럼(21-40) | 트랙백(1) | 덧글(2)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제목 : ...솔직히 말해 잊고 있었네요-_-;;
벌써 한달도 전에 여기에 가입해놓고서는 저 밑의 사이버 포뮬러 포스팅에서 라큄님이 알려주시기 전까지 가든을 잊고 있었습니다(버엉)그런고로 대략 반성의 의미로 성우에 관한 에피소드 하나 써보도록 하죠 ㅇㅅㅇ/;; 투니버스의 PD이시자 이글루스 블로거이기도 하신 신동식PD님이 뉴타입에서 연재했던 이야기중 일부입니다. ----------------- 피디님의 부모님도 관련 일에 종사하셔서 피디님이 어릴적에는 성우......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