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은 아닌 이야기... (28)
설마 그 날 오고 간 이야기가 현실로 다가올 줄은 그 땐 몰랐었다. 어느 한가로운 날, 필자는 평소 형님으로 모시는 성우 구자형 씨와 카페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 때 구자형 씨 질문 “혹시 윤소라 선배님하고 작업할 거 있니?” 필자의 답 “아뇨. 다음 들어갈 작품에서는 마땅한 게 없는데… 갑자기 왜요?” 알고 보니 그 때 윤소라 씨가 몇 달간 미국에 가려 계획하고 있었고 그 날짜가 거의 임박해 있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필자가 스케줄이 긴 시리즈에 윤소라 씨를 캐스팅하려는 계획은 없나 하고 미리 알려주는 것이었다. 해당사항이 없었기에 잠깐 관심을 보이다 화제를 돌렸고, 그 일은 그냥 그렇게 잊혀져 갔다.
그로부터 얼마 후 윤소라 씨가 미국에 갔다는 이야기가 들렸고, 다시 반 년이 넘게 시간이 흘러갔다. 그 시점에서 필자가 녹음 준비를 하던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시티헌터 TV스페셜’. 그리고… 그 작품에 나오는 ‘미카’라는 고정배역의 성우가 윤소라 씨였다. 순간 땀방울 하나 찐하게 등골을 타고 흘렀다. 하지만 아마 돌아와 있을 것이라고 애써 자신을 달래며 수소문에 들어갔다. 하지만 잔인하게도 윤소라 씨는 아직 미국에 있었다. 떠나기 전에 다른 이들에게 말했던 체류기간을 넘기고 말이다.
더욱 잔인하게도 방송일정은 바짝 다가왔다. 결국 대타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대타는 투니버스 2기 출신인 박경혜 씨를 낙찰했다. 박경혜 씨의 경우는 이전부터 시티헌터 시리즈에 게스트 출연을 자주 했기 때문에 작품의 분위기를 잘 알고있고, 거기에 더해 윤소라 씨의 연기를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는 매우 강한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마음을 정한 뒤 박경혜 씨를 섭외하면서 다음과 같은 주문을 했다. ‘이번 연기는 윤소라 씨처럼 해야 한다’고! 더빙질 시작한 이래 처음 해보는 이상한 주문이었다. 캐릭터에 더욱 몰입해주길 바라는 주문이야 자주 했었다. 하지만 다른 성우처럼 해달라고, 그것도 모 성우의 스타일을 참고해서 하자는 수준도 아니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비슷하게 해달라는 주문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주문을 하는 자신이 무척이나 창피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때는 어떻게 하면 티가 덜 날까 하는 생각뿐이었으니까. 이처럼 방송도중에 어떤 캐릭터의 고정 성우가 바뀌는 상황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리고 흔하면 안 된다. 작품의 질이 떨어지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시청자에 대한 서비스차원에서 볼 때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필자도 그때까지 그런 상황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한 번 겪고 나니 그 뒤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GO GO 다섯 쌍둥이를 녹음할 때였다. 첫 녹음을 무사히 마치고 다음 녹음을 준비하려고 할 때 당시 전속 우였던 J양이 타방송국의 성우 시험을 보고 합격해 자리를 옮기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 때 J양의 배역은 ‘홍이’라는 나름대로 터프한 꼬마 캐릭터였다. 그리고 그 ‘홍이’는 다섯 쌍둥이 중 한 명인, 즉 주인공들 중 하나였다. 난감했다. 첫술 뜨자마자 바로 체한 느낌이랄까? 떠나기로 마음 먹은 사람 붙잡을 수도 없고, 첫 녹음한 것을 버리고 다른 성우 캐스팅해서 새로 녹음할 여력도 없었다.
결국 다른 전속 성우인 Y양을 호출! 두 번째 녹음부터 J양이 맡았던 ‘홍이’를 연기해달라고 한다. 물론, 최대한 J양처럼 해서 티가 나지 않게 해달라는 신신당부와 함께! 그리고 Y양은 임무(?!)를 충실히 완수해냈다. 일단 종합편집을 하는 엔지니어가 성우가 바뀐 사실을 느끼지 못했으니 말이다. 물론 두 성우의 목소리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홍이’라는 캐릭터가 평상시 목소리를 깔고 폼을 잡는 성격이라, 이를 연기할 때 성우도 목소리를 좀 구겨서 굵게 해줘야 했다.
다행히도 이런 경우는 비슷하게 연기하기가 좀 쉽다. 게다가 시점이 방송 들어가기 전이었기 때문에 엔딩 크레딧에 처음부터 Y양의 이름을 넣을 수 있었고, 이로써 방송 중간에 성우 이름이 바뀌는 상황도 원천봉쇄! 이렇게 해서 GO GO 다섯 쌍둥이 1-5화 다섯편의 경우는 ‘홍이’역을 엔딩 크레딧에 이름이 오른 Y양이 아닌 J양이 연기했지만 시청자들은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는, 한마디로 완전범죄(?!)가 이루어지게 됐다.
그러나 필자가 난생 처음 저지른 이 범죄에 신이 분노했는지 GO GO 다섯 쌍둥이 녹음은 다시 위기상황에 처하고 만다. 다섯 쌍둥이 최고 공주인 ‘보라’역의 성우 양정화 씨가 건강상의 이유로 2주간 녹음을 하지 못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당시 양정화 씨는 다섯 쌍둥이 외에도 ‘지구 방위 가족’에도 출연하고 있었고, 그 작품 역시 필자가 연출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두 배의 위기상황이 무겁게 필자를 누르기 시작했다. 다행히 지구 방위 가족은 2주의 공백기도 메울 수 있을 만큼 녹음을 일찍 시작했기 때문에 가볍게 위기를 벗어났다. 하지만 다섯 쌍둥이의 경우는 1주의 여유밖에 없었다.
결국 ‘대타’를 찾게 되고 대타는 다섯 쌍둥이에서 ‘하늘’역을 맡고 있는 성우 이자명 씨를 택했다. 같이 출연하고 있으므로 작품을 잘 알고있고, 목소리가 양정화 씨와 비슷한 하이톤이면서 거기에 더해 기존에 연기하던 하늘이는 남자애라 여자아역을 하나 더해도 구분에 무리가 없다는 여러 장점들이 이유였다. 대타 녹음을 위해 스튜디오로 들어가는 이자명 씨에게 필자가 뭐라고 했을지 이제 다들 짐작하실 것이다. 바로 ‘양정화 씨처럼 연기해줘요’였다. 녹음 결과는 이전 ‘홍이’와 달리 ‘보라’는 목소리 예쁘게 내는 여자 아역인 탓에 심혈을 기울이긴 했으나 아무래도 티가 날 수밖에 없었다. 대타로 녹음한 부분이 방송되고 ‘뭔가 이상하다’라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슬금슬금 필자의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조금 바뀌었다’라는 얌전한(?!) 반응에서 ‘아무리 들어도 이자명 성우의 목소리다’라는 무척 전문적(?!)인 반응까지…
이렇게 꼬리를 무는 대타 기용 녹음은 얼마 전 녹음을 끝낸 다다다2에도 있었다. 전편에서 주인공 예나의 엄마와 아빠 역을 맡았던 남녀 성우가 모두 다른 곳으로 적을 옮긴 상태였다. 대타를 기용하는 것 외에는 다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다만 이전과 다른 것은 예나 엄마, 아빠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은 캐릭터였다. 해서 대타로 기용된 성우들에게도 굳이 ‘~처럼 해달라’는 주문을 하지는 않았다. 새로 기용된 성우들은 자신이 느끼고 설정한 대로 연기했고 별다른 이상 없이 기존의 주인공 캐릭터들과 잘 융화되면서 녹음을 마칠 수 있었다. 이런 일들을 겪고 나니 얼마 전 ‘더 파이팅’ 2부 녹음을 위해 반 년 만에 출연 성우들에게 연락을 돌릴 때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른다. 혹시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누군가 녹음을 못한다고 할까 봐 말이다. 다행히 기존의 모든 성우들이 이상 없이 첫 녹음에 참가해줬고 분위기는 이전 그대로 뜨거웠다. 시청자들의 귀를 헷갈리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처럼’ 상황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며 이만 줄인다.
설마 그 날 오고 간 이야기가 현실로 다가올 줄은 그 땐 몰랐었다. 어느 한가로운 날, 필자는 평소 형님으로 모시는 성우 구자형 씨와 카페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 때 구자형 씨 질문 “혹시 윤소라 선배님하고 작업할 거 있니?” 필자의 답 “아뇨. 다음 들어갈 작품에서는 마땅한 게 없는데… 갑자기 왜요?” 알고 보니 그 때 윤소라 씨가 몇 달간 미국에 가려 계획하고 있었고 그 날짜가 거의 임박해 있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필자가 스케줄이 긴 시리즈에 윤소라 씨를 캐스팅하려는 계획은 없나 하고 미리 알려주는 것이었다. 해당사항이 없었기에 잠깐 관심을 보이다 화제를 돌렸고, 그 일은 그냥 그렇게 잊혀져 갔다.
그로부터 얼마 후 윤소라 씨가 미국에 갔다는 이야기가 들렸고, 다시 반 년이 넘게 시간이 흘러갔다. 그 시점에서 필자가 녹음 준비를 하던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시티헌터 TV스페셜’. 그리고… 그 작품에 나오는 ‘미카’라는 고정배역의 성우가 윤소라 씨였다. 순간 땀방울 하나 찐하게 등골을 타고 흘렀다. 하지만 아마 돌아와 있을 것이라고 애써 자신을 달래며 수소문에 들어갔다. 하지만 잔인하게도 윤소라 씨는 아직 미국에 있었다. 떠나기 전에 다른 이들에게 말했던 체류기간을 넘기고 말이다.
더욱 잔인하게도 방송일정은 바짝 다가왔다. 결국 대타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대타는 투니버스 2기 출신인 박경혜 씨를 낙찰했다. 박경혜 씨의 경우는 이전부터 시티헌터 시리즈에 게스트 출연을 자주 했기 때문에 작품의 분위기를 잘 알고있고, 거기에 더해 윤소라 씨의 연기를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는 매우 강한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마음을 정한 뒤 박경혜 씨를 섭외하면서 다음과 같은 주문을 했다. ‘이번 연기는 윤소라 씨처럼 해야 한다’고! 더빙질 시작한 이래 처음 해보는 이상한 주문이었다. 캐릭터에 더욱 몰입해주길 바라는 주문이야 자주 했었다. 하지만 다른 성우처럼 해달라고, 그것도 모 성우의 스타일을 참고해서 하자는 수준도 아니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비슷하게 해달라는 주문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주문을 하는 자신이 무척이나 창피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때는 어떻게 하면 티가 덜 날까 하는 생각뿐이었으니까. 이처럼 방송도중에 어떤 캐릭터의 고정 성우가 바뀌는 상황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리고 흔하면 안 된다. 작품의 질이 떨어지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시청자에 대한 서비스차원에서 볼 때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필자도 그때까지 그런 상황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한 번 겪고 나니 그 뒤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GO GO 다섯 쌍둥이를 녹음할 때였다. 첫 녹음을 무사히 마치고 다음 녹음을 준비하려고 할 때 당시 전속 우였던 J양이 타방송국의 성우 시험을 보고 합격해 자리를 옮기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 때 J양의 배역은 ‘홍이’라는 나름대로 터프한 꼬마 캐릭터였다. 그리고 그 ‘홍이’는 다섯 쌍둥이 중 한 명인, 즉 주인공들 중 하나였다. 난감했다. 첫술 뜨자마자 바로 체한 느낌이랄까? 떠나기로 마음 먹은 사람 붙잡을 수도 없고, 첫 녹음한 것을 버리고 다른 성우 캐스팅해서 새로 녹음할 여력도 없었다.
결국 다른 전속 성우인 Y양을 호출! 두 번째 녹음부터 J양이 맡았던 ‘홍이’를 연기해달라고 한다. 물론, 최대한 J양처럼 해서 티가 나지 않게 해달라는 신신당부와 함께! 그리고 Y양은 임무(?!)를 충실히 완수해냈다. 일단 종합편집을 하는 엔지니어가 성우가 바뀐 사실을 느끼지 못했으니 말이다. 물론 두 성우의 목소리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홍이’라는 캐릭터가 평상시 목소리를 깔고 폼을 잡는 성격이라, 이를 연기할 때 성우도 목소리를 좀 구겨서 굵게 해줘야 했다.
다행히도 이런 경우는 비슷하게 연기하기가 좀 쉽다. 게다가 시점이 방송 들어가기 전이었기 때문에 엔딩 크레딧에 처음부터 Y양의 이름을 넣을 수 있었고, 이로써 방송 중간에 성우 이름이 바뀌는 상황도 원천봉쇄! 이렇게 해서 GO GO 다섯 쌍둥이 1-5화 다섯편의 경우는 ‘홍이’역을 엔딩 크레딧에 이름이 오른 Y양이 아닌 J양이 연기했지만 시청자들은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는, 한마디로 완전범죄(?!)가 이루어지게 됐다.
그러나 필자가 난생 처음 저지른 이 범죄에 신이 분노했는지 GO GO 다섯 쌍둥이 녹음은 다시 위기상황에 처하고 만다. 다섯 쌍둥이 최고 공주인 ‘보라’역의 성우 양정화 씨가 건강상의 이유로 2주간 녹음을 하지 못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당시 양정화 씨는 다섯 쌍둥이 외에도 ‘지구 방위 가족’에도 출연하고 있었고, 그 작품 역시 필자가 연출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두 배의 위기상황이 무겁게 필자를 누르기 시작했다. 다행히 지구 방위 가족은 2주의 공백기도 메울 수 있을 만큼 녹음을 일찍 시작했기 때문에 가볍게 위기를 벗어났다. 하지만 다섯 쌍둥이의 경우는 1주의 여유밖에 없었다.
결국 ‘대타’를 찾게 되고 대타는 다섯 쌍둥이에서 ‘하늘’역을 맡고 있는 성우 이자명 씨를 택했다. 같이 출연하고 있으므로 작품을 잘 알고있고, 목소리가 양정화 씨와 비슷한 하이톤이면서 거기에 더해 기존에 연기하던 하늘이는 남자애라 여자아역을 하나 더해도 구분에 무리가 없다는 여러 장점들이 이유였다. 대타 녹음을 위해 스튜디오로 들어가는 이자명 씨에게 필자가 뭐라고 했을지 이제 다들 짐작하실 것이다. 바로 ‘양정화 씨처럼 연기해줘요’였다. 녹음 결과는 이전 ‘홍이’와 달리 ‘보라’는 목소리 예쁘게 내는 여자 아역인 탓에 심혈을 기울이긴 했으나 아무래도 티가 날 수밖에 없었다. 대타로 녹음한 부분이 방송되고 ‘뭔가 이상하다’라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슬금슬금 필자의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조금 바뀌었다’라는 얌전한(?!) 반응에서 ‘아무리 들어도 이자명 성우의 목소리다’라는 무척 전문적(?!)인 반응까지…
이렇게 꼬리를 무는 대타 기용 녹음은 얼마 전 녹음을 끝낸 다다다2에도 있었다. 전편에서 주인공 예나의 엄마와 아빠 역을 맡았던 남녀 성우가 모두 다른 곳으로 적을 옮긴 상태였다. 대타를 기용하는 것 외에는 다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다만 이전과 다른 것은 예나 엄마, 아빠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은 캐릭터였다. 해서 대타로 기용된 성우들에게도 굳이 ‘~처럼 해달라’는 주문을 하지는 않았다. 새로 기용된 성우들은 자신이 느끼고 설정한 대로 연기했고 별다른 이상 없이 기존의 주인공 캐릭터들과 잘 융화되면서 녹음을 마칠 수 있었다. 이런 일들을 겪고 나니 얼마 전 ‘더 파이팅’ 2부 녹음을 위해 반 년 만에 출연 성우들에게 연락을 돌릴 때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른다. 혹시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누군가 녹음을 못한다고 할까 봐 말이다. 다행히 기존의 모든 성우들이 이상 없이 첫 녹음에 참가해줬고 분위기는 이전 그대로 뜨거웠다. 시청자들의 귀를 헷갈리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처럼’ 상황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며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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