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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初心)을 넘어서…

비밀은 아닌 이야기... (29)

 초심(初心)을 잃지 말자는 말 많이 들어보셨을 것이다. 최근엔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 당부하는 말로 많이 등장했었다. 그리고 이 말은 굳이 대통령처럼 높은 지위의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각 분야 모두에 적용되는 말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일정 시간이 지나고 매너리즘(mannerism)에 빠지는 때가 온다. 다양할 것 같은 사회생활이지만 대부분 상당히 반복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회생활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중요한 것이 바로 ‘초심’을 기억해 내는 것이다.

 2년 전인가 오랜만에 대학 후배를 만났다.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인 이 후배는 술자리에서 매너리즘에 빠진 자신에 대해 호소했고, 순간 필자는 후배가 처음 선생님을 하던 때를 기억했다. 너무나 즐거워하고 재미있어 하던 그 모습을. 그리고 후배에게 상기시켜줬다. 영화감독을 꿈꾸며 충무로까지 갔던 후배. 제목만 대면 웬만한 영화 팬은 다 기억할 모 영화에 조감독까지 했었다. 그런 후배가 어느 날 국어 선생님이 됐다고 말했던 날(사실 후배의 전공은 국어 교육학과이긴 했다), 반신반의하던 필자가 ‘선생님이 네 천직인가 보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재미있게 들었던 후배의 선생님 생활. 그 때의 열정을. 비록 술에 취하긴 했지만 필자의 말에 공감해주던 후배를 보며 필자가 겪었던 일이 떠올랐다.

 한참 애니메이션 녹음에 임하던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그 생각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다’ 였다. 처음 녹음을 시작한 이후 그 때까지 줄곧 필자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있었다. 뭔가 새로운 녹음 진행 방식은 없을까? 성우의 개성을 파악하는 새로운 방식은 없을까? 등등 기존의 것과 다른 것에 대한 갈구를 멈추지 않았고 몇 년 사이 제법 발전을 이루기도 한 것이 사실이었다.

 헌데 그 날 든 생각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새로운 방식은 없다는 것. 어찌 보면 벌써 한계에 도달한 것이었다. 정말 한동안 멍했다. 머리 속을 맴도는 생각은 ‘벌써 떠나야 하나’. 지금 돌이켜보면 무척이나 건방진 생각이긴 하지만 당시엔 꽤 심각했다. 그 상황을 극복했던 것은 역시 ‘초심’! 처음 녹음을 준비하던 바로 그 때처럼 다시 열심히 하자는 마음으로 나름의 위기를 극복했다. 그 때 농구에 비유하며 초심을 떠올렸던 것이 생각난다. 새로운 공격 전술, 새로운 수비 전술 개발에만 힘을 쏟지 말고 하나의 리바운드를 잡기 위해 스크린 아웃을 철저히 해야 한다라는 생각(무척이나 만화 슬램덩크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 이것은 성우들이 연기하기에 보다 좋은 대본을 만들기 위해 밤을 새가며 어레인지에 몰두했던 처음의 모습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했고 그 때부터 필자는 ‘다시 기본에 충실하겠다’라며 주위에까지 떠들어댔다.

 이후 별다른 일없이 잘 지내던 필자는 얼마 전 다시 한 번 사고의 전환을 가져오는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된다.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명배우 ‘오드리 헵번’에 대한 코너를 보다가 일어난 일이다. 그 코너에 나온 헵번의 주옥 같은 명화와 명장면에 그 영화들을 보던 때가 기억 났고 그야말로 한순간 가슴이 떨리는 추억에 잠겼다. 너무나 천사같이 예쁘면서도 어찌나 연기를 잘하는지 나이 들어서 보는 영화(20대에 봤음!)임에도 마치 사실처럼, 내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처럼 빠져들어서 보던 헵번에 대한 감동의 추억. 그러다 문득 현재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어지는 생각…’…감동이 없다…’ 아아 그렇다. 언제부터인가 ‘감동’을 잊고 살았던 것이다. 그렇게나 냉혈 동물이었냐고? 그건 아니고(^^) 제대로 감동하는 법을 나도 모르는 사이 잊어먹고 있었다는 것이 더 옳을지도 모르겠다.

 녹음 경력이 쌓일수록 모든 면을 ‘평가’하는 버릇이 생겼고 이 ‘평가’의 범주 안에서 감동을 느꼈다고 생각한 것이다. 좀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가령 모 성우가 ‘슬픈 연기’를 했을 때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음… 흐느낌의 상태가 무척 리얼하군. 약간 오버성이 있긴 하지만 상당히 진실하게 다가가는 면이 있으니 이만하면 감동적인 연기지!’ 아니면 ‘정말 감동적이군! 대한민국 성우 중 저만큼 저 장면에서 리얼한 연기를 할 수 있는 분이 얼마나 될까? 흐느끼는 상태에서 저만큼 대사전달력을 발휘하는 것은 정말 고 난이도의 테크닉이지! 감동이야!’ 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것은 어쩌면 프로페셔널이 되면 될수록 더욱 많이 나타나는 일일 것이다. 제 3자의 시각에서 보다 냉정하게 작품을 파악하고 표현의 수위를 정하며 대중의 반응을 예상해가며 방향을 정한다. 이렇게 보면 무지하게 프로페셔널처럼 보이지 않는가? 하지만 여기에서 빠진 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감동’이다. 맞다. 이전까지 그 진정한 ‘감동’을 일종의 아마추어리즘(amateurism)으로 폄훼하며 ‘프로는 냉정해야 한다’라고 소리 높여 외쳤었다. 하지만 헵번을 추억하며 이른바 ‘프로’로서 물들기 이전의 순수한 감상자(시청자 혹은 관람객)로서의 ‘감동’을 떠올리게 됐고, 최근의 필자의 상태인 ‘프로’의 입장에서 볼 때 뭔가 결여된 것이 바로 ‘감동’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물론 프로가 냉정하지 않고 ‘감동’에 젖어만 있다면 그것은 나르시시즘(narcissism)과 유사한 형태로 흐를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바꿔 말해 ‘자기 만족’에 불과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그래서 ‘아마추어’적이라고 표현해왔고 말이다. 그러나 ‘감동’이 없다는 것… 그것은 ‘꿈’이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이제 또 다시 사고(思考)의 전환을 이뤄야 할 시기가 왔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 처음 그 일을 시작하던 시절의 열정과 패기를 되살리도록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처음의 사고전환이요, 그리고 그것을 넘어 너무나 프로페셔널이라는 자각에 매달려있을 때 초심보다도 이전, 정말 순수하게 ‘감동’하며 그 일을 ‘꿈’꾸던 시절을 기억해내고 그 ‘순수함’을 ‘프로’의 일에 다시 접목시키고자 하는 두 번째 사고의 전환!

 어린 시절 만화영화를 보며 울고 웃었던 때의 느낌, 정말 꿈이 많던 시절이었고 그 꿈을 바탕으로 정말 순수하게 감동하던 시기. 필자와 여러 성우들, 그리고 스태프들은 바로 이러한 시기에 처해있는 이들에게 작품을 선보이는 사람들이다. ‘이정도의 표현이면, 이만큼 기술적으로 처리하면 아마 어느 정도 좋아하고 감동하겠지…’가 아닌 PD도 성우도 엔지니어 모두 스스로 ‘감동’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보는 이들도 진정으로 감동하지 않을까? 물론 처음부터 ‘감동’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프로’로서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실력을 연마한 뒤에 말이다. 그리고 이 ‘감동’은 몇몇 시청자들에게도 해당될 것 같다. 나이 2,30대의 아주 오랜 경력(?)을 지닌 소위 매니아급 시청자들의 경우 필자보다도 더 ‘평가’에 연연하며 작품을 바라보는 것으로 알고있다. 가끔은 마음 편하게, 옛날처럼 감상해보시길 권한다. 필자가 요즘 그렇게 감상 중인데… 참 좋다!^^;;;

by 무디 | 2005/07/31 16:20 | 뉴타입 컬럼(01-50)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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