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가 주인공일 수 있게 뉴타입 칼럼

비밀은 아닌 이야기...(93)

 인기 성우 강수진 씨와 여러 행사에서 MC로 두각을 나타낸 로즈나비 씨가 진행하는 인터넷 라디오방송 ‘우락부락 판타지’에 출연을 했습니다. 제가 얼굴 드러내는 인터뷰는 좀 사양하는 편이지만 목소리만 나간다면 굳이 사양하지 않는 성격이라서 즐거운 마음으로 임했어요. 다만 늦은 밤 많은 분들 귀에 거슬리지 않았을까 조금 걱정되긴 합니다. ^^

 우락부락 판타지는 방송국 차원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닌 성우 개인의 힘과 팬들의 후원으로 꾸려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운영되는 규모로만 본다면 다소 안타까운 측면이 보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방송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봅니다. 불과 얼마 전만해도 ‘방송’이라는 것은 제작 시설과 송출 시설을 갖춘 제대로 된 방송국에서만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라디오라고 해도 말이지요. 수년 전에 있었던 성우 오세홍 선생님의 인터넷 라디오 방송국의 경우도 생방송이 아닌, 녹음한 라디오 드라마를 클릭해서 듣는 방식이었죠. 헌데 지금은 자그마한 개인 공간에 마이크와 컴퓨터만 있으면 라디오 생방송이 가능한 시대입니다. 정말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어요.

 오래 전 라디오는 성우들의 무대였습니다. 수많은 라디오 드라마가 존재했고, 여러 음악프로그램에도 성우가 DJ로 활약하곤 했습니다. 지금의 라디오에서 성우들의 존재는 너무 약해졌습니다. 라디오 드라마는 거의 존재하지 않고, DJ는 TV에 얼굴을 비추는 연예인들이 독차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야말로, 지금 라디오 방송엔 광고에만 성우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지요. 목소리만 나오는 라디오에서 목소리로 연기하는 성우들이 설 자리가 없는 겁니다. 

 제가 대학생 때 일입니다. 당시 전 대학방송국에서 라디오 방송을 하고 있었죠. 그때 기술부문 자문을 해주셨던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1992년쯤입니다) 비디오 기술이 발달하고 있어서 마치 라디오는 얼마 뒤면 사라질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비디오가 발달할수록 오디오는 더 중요해지고, 라디오는 다른 의미로 계속 존재할 것이다’ 라고요. 케이블 채널에 위성 채널까지 넘쳐나는 오늘은 시간이 없어 TV보기도 힘든 판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라디오는 살아있습니다. 예전에 비해 자동차에서 듣는 청취자들이 많이 늘어났고요, 주부들은 여전히 가사일을 하면서 라디오를 듣습니다. 눈을 방해하지 않는 라디오의 본래의 특성이 다른 일을 하면서 라디오를 듣는 멀티 형태로 진화하고 있는 거죠. 하지만 지금의 지상파 라디오는 대부분 TV방송의 연장 차원이 많아졌습니다. 위에서 말했듯 TV에서 인기를 얻은 연예인들이 진행을 독식하면서 라디오만의 스타는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현재 지상파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는 라디오만의 스타는 모두 과거 형입니다. 어지간하면 20년 이상 경력을 지닌 분들만 남아있죠. 장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에서요.

 이런 현재의 상황에서 성우가 진행하는 인터넷 라디오 방송, 더군다나 주제가 애니메이션에 맞춰진 방송은 희소성과 함께 나름의 충분한 가치를 지녔다고 하겠습니다. 일찍이 투니버스 홈페이지에서도 ‘애니 아이 니’ 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었죠. 윤여진, 양정화, 김장 씨 등 투니버스 출신 인기 성우들이 진행을 맡아 많은 호응을 받았습니다. 다만 이 프로그램 또한 생방송이 아니기 때문에 청취자들과 즉석에서 호흡을 나눌 수는 없었던 단점이 있었죠. 이 단점마저 보완한 방송이 우락부락 판타지인 듯 합니다. 그러기에 충분한 존재의 의미가 있고, 더욱 자리를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해서 성우들이 주인공인 인터넷 라디오 방송이 출현할 수 있도록 말이죠.

 지난 달 뉴타입 부록으로 만화 정글고교 오디오 드라마 CD가 나왔습니다. 예전 천애 오디오 CD 이후 얼마만이죠? 참 반가웠습니다. 천애 오디오 CD는 앞에서 언급한 성우 오세홍 선생님의 인터넷 라디오 방송국(명칭은 ‘옛날 방송국’이었습니다)에서 제작한 것이죠. 일본에선 일반화 되어 있는 오디오CD지만 국내에서는 천애 CD가 아마 최초였을 겁니다. 지금은 성우 팬들 사이에서 거의 전설이 되어있죠? 무엇보다도 지상파 라디오에서 설 자리를 잃은 성우들의 라디오 드라마가 CD로 모습을 보였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랜 동안 그와 같은 시도가 없었는데요, 뉴타입에서 다시 불씨를 살렸네요. 

 사실 그 동안 주변에선 성우들의 라디오 드라마 CD제작과 관련한 논의가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야기는 꾸준히 있었지만 시장성이 너무 없다는 것이 늘 걸림돌이었습니다. 수준 높은 제작을 위해선 아무래도 비용이 상승할 수밖에 없는데, 어디서 후원을 받지 않는 한 발매 후 제작비를 회수하지 못한다면 말 그대로 적자가 될 확률이 높고, 이를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인 거죠. 오디오 드라마는 분명 매력이 있는 장르입니다. 눈을 감고 연기를 느끼며 상황을 마음으로 그려낼 수 있기에,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마치 직접 참여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죠. 문제는 이러한 장점을 한참 넘어서는 접근성입니다. 많은 분들이 호기심과 기대를 가지고 접근해야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죠. 지금 세상엔 재미있는 볼거리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기존 방송사들이 쏟아내던 볼거리를 넘어서서 UCC를 통해 많은 일반인들도 볼거리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UCC만 골라봐도 하루 종일 재미있게 지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단지 ‘오디오’뿐인 CD, 그것도 비용을 내고 구입해야 하는 형태라면 견디기 힘들지 않을까요?

 뉴타입이 맥락을 이은 오디오 CD가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은 우리 애니메이션의 멀티 유즈 형태가 가장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저작권 등의 문제로 인해 수입 애니메이션이 아닌 우리 애니메이션으로 국한해야 할 듯 합니다. 다음으로 애니메이션을 통해 캐릭터와 성우 목소리가 동일시 되는 전제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러한 전제 조건이 없다면 일단 성우 목소리가 낯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경우 접근성을 떨어지게 하는 원인을 제공할 겁니다. 예전 X파일처럼 성우 목소리만 들어도 그 캐릭터가 떠오를 정도가 되면 접근성이 용이하다고 할 수 있죠. 아니, 아주 바람직할 겁니다. 이런 형태가 아니라면 소수의 성우 팬들만이 대상이 될 수밖에 없고, 그럴 경우 기성 성우들이 참여하는 제작은 계속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성우들이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 라디오 드라마. 지상파에서는 들을 수 없지만 분명 새로운 길은 있습니다. 아직은 작은 몸짓이지만 언젠가는 보다 크게 날 수 있으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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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레지스터』 2008/08/03 23:11 # 삭제 답글

    우판... 정말 매력적인 시도인만큼 중간에 좌초한다거나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훗날 성우들의 라디오방송이 '보편화' 되었을때, 그 첫머리에 우판이 장식되길 바라봅니다.. ^^
  • 무디 2008/08/04 11:14 # 답글

    그러게요. 일단 많은 분들의 사랑이 계속되길 바래야겠습니다.
  • 지사모모집 2008/08/14 05:51 # 삭제 답글

    우락부락판타지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방송입니다.
    가장 존경하는 성우분인 수진님의 '생방송'도 매력적이지만
    방송 자체의 재미도 만만치 않아서 즐겁게 청취 중입니다.^^
    더 많이 많이 발전해서 성우계의 "꽃"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조금 미약한 힘이지만 힘을 보태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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