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비빔밥 만들기 돌아다니고/먹고

분가하고나니 어머님이 만들어주시던 음식들이 자주 생각이 났죠. 이미 10년도 넘었지만요. 몇몇 어머니만의 특별요리도 기억에 남지만 가장 선명한 것은 평범한 메뉴인 비빔밥이었습니다. 도라지, 고사리, 콩나물, 시금치가 주요 나물이었고, 상황에 따라 몇몇 재료가 더 추가되어서 만든 비빔밥입니다. 특히 도라지와 고사리가 맛있었는데, 그냥 먹어도 맛있게 볶아서 만드셨죠. '비빌'것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 아니라, 각각 반찬으로 독립(?!)해도 훌륭한 상태로 조리를 한 뒤 비빔밥을 해먹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런지 같은 재료라도 집에서 먹었던 비빔밥이 훨씬 맛있었던 기억이 여전합니다. 

어느덧 두 아이의 아빠가 뒤늦게 된 무디가... 역시 뒤늦게 산모가 된 마눌님과 졸지에 장녀가 된 딸내미를 위해 무엇을 만들까 하다가 이런 옛 생각을 떠올리곤 비빔밥에 도전했습니다. 토요일 저녁부터 준비에 들어가 다음날 일요일 점심에 차려냈습니다.
맨 먼저 준비했던 오이볶음. 오이를 소금에 절인 뒤 물기를 쫙 빼고 마늘과 소금을 넣고 볶았는데, 물기가 살짝 덜 빠졌습니다. 해서 꼬들꼬들한 상태를 원했는데 살짝 호박스러운 분위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맛은 오이답게 살렸습니다.
가장 난이도 높은 나물 중 하나인 도라지. 어지간하게 만들었다간 쓴 맛만 보게되니까요. 일단 물에 오랫동안 담갔다가 물기를 짜내고 소금에 박박 문지른 뒤 다시 물에 담가서 소금기를 제거했습니다. 이후 매우 꽈~악 물기를 짜낸 뒤 마늘과 약간의 참치액젖을 넣고 달달 볶았습니다. 살짝 미역국 국물도 육수삼아 첨가했고요. 소금으로 간하고 후추도 살짝 뿌렸습니다.
다음은 고사리볶음. 도라지와 달리 육수를 많이 넣고 졸이듯 볶아냈습니다. 어머니는 다시마국물로 하면 좋다고 하셨는데, 다시마나 미역이나 별 차이 없지 않냐고 독단적으로 판단하고 미역국 국물을 많이 첨가해 졸여봤습니다. 괜찮은 결과를 만들었죠. 여기까지가 토요일 저녁부터 밤까지 만든 나물입니다.
당일 일요일 아침엔 비교적 빨리 만들 수 있는 나물들을 준비했죠. 먼저 시금치! 끓는 물에 정말 살짝만 데친 뒤 찬물에 씻어내니 제법 통통하게 씹히는 맛이 나더군요. 참기름, 깨소금 등등 넣고 버무렸습니다. 아주 쉽게 만들 수 있더군요.
역시 만들기 쉬운 콩나물 무침. 5분 정도 삶은 뒤 헹궈서 무쳤습니다. 딱 5분 정도가 좋더군요. 탱탱한 맛이 살아있습니다.
느타리버섯 뜯어서 기름에 달달 볶았습니다. 이건 뭐 일도 아니더군요. 하지만 맛에 크게 일조하는 아이템이죠.
비빔밥의 색상을 위해 당근도 준비했습니다. 역시 일도 아닌 녀석이지만... 채써는 과정이 힘들더군요. 제가 어디 칼을 자주 써봤어야죠? 기름에 볶는 시간보다 채써는 시간이 한참 더 걸렸습니다.

이렇게 1박2일 동안 준비한 나물들을 가지고 비빔밥을 차려냈습니다.
나름 일곱 가지 나물이 들어간 비빔밥이 완성됐습니다. 저렇게 모양 잡아놓고 사진 찍는데 정말 울컥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맛집에 가서 사진 찍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뭉클함이 있더군요. 제 스스로가 대견하기 보다는, 제가 마냥 맛있게만 먹었던 한 그릇의 비빔밥이 이렇게 오래 준비를 해야하는 것을 몸으로 깨닫고, 어머니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혼자 만들고, 혼자 감동하고, 혼자 사진찍는 동안 옆자리의 딸내미는 거의 다먹어가고 있더군요. 뒤늦게 비벼놓고 마구 먹어대기 전에 사진 한방 찍어줬습니다.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첫술까지도 사진을 찍었네요. 1박2일 준비한 저의 첫번째 비빔밥입니다. 다른 분들껜 맛을 전할 수는 없고 마음을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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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미르누리 2009/11/02 23:30 # 답글

    아 야밤에 테러세요...
  • 무디 2009/11/02 23:32 #

    방금도 보채는 둘째녀석 안아주다가 왔는데...
    간만에 올린 포스팅이 테러라 죄송합니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만든 테러인데... 헤헤... ^^
  • 루민 2009/11/03 00:03 # 삭제 답글

    이건 전문가 솜씨인데요. 특히 사진엔 안나왔지만 모양 잘 잡힌 반숙 달걀은 쉽게 구사하기 힘든 기술인데 이참에 부업으로 음식점 차리셔도...^^
  • 무디 2009/11/03 09:23 #

    그저 정성으로 만들었을 뿐입니다. 1박 2일 걸려서 3인분 만드는 솜씨로 어떻게 음식점을.. ^^
  • 소피아 세라노 2009/11/03 15:04 # 답글

    안녕하세요- 메인에서 넘어왔습니다:)
    한 그릇의 비빔밥이 완성되는데 이렇게나 공이 들어가는군요. 가족들을 위해 늘 정성스레 밥상을 차리시는 어머니 생각에 저 역시도 새삼 울컥했습니다...쿨찌럭- ;ㅅ; 맛깔나게 무쳐진 나물도 그렇고 소담스레 담겨있는 비빔밥도 너무 먹음직스러워보입니다- 이렇게 정성이 가득담긴 요리를 해주시는 남편분과 아버지를 가진.. 아내분과 따님이 참으로 행복하실 것 같아요:)
  • 무디 2009/11/03 16:22 #

    요즘은 제가 점수 좀 따고 있습니다. 아하핫~ ^^a;;
  • 카이º 2009/11/03 15:13 # 답글

    어휴 완전 먹음직 스러운걸요 ;ㅅ;!
  • 무디 2009/11/03 16:22 #

    헤헤... 제법 맛이 있었습니다. 더 자랑하고 싶지만
    제 자랑이라 이 정도 선에서... ^^;;
  • 세헤라자데 2009/11/03 17:29 # 삭제 답글

    ....전부터 느낀거지만, 어느샌가 아저씨가 아니라 아줌마가 되가고 계시는군요
  • 무디 2009/11/03 17:39 #

    ...그렇다면 제가 수년 전부터 머리를 길게 기른 것은...
    아줌마가 되기 위한 치밀한 코스프레??? ^^;;
  • 페이☆이쥬 2009/11/03 20:37 # 답글

    우와! 맛있겠어요!! 먹고 싶어지네요..(츄릅)
    뭐,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 나름 호강(?)하는 느낌....이랄까......
    저희 아버지는 비비는 거 잘하시는데... 엄마 말씀에 따르면 뭔가 다르대요.
    재료 선정이라던가, 뭔가가 뭔지는 모르지만 저두 아부지가 해주는 비빔밥 좋아해요.>ㅅ<
  • 무디 2009/11/03 21:41 #

    그러시군요. 훌륭한 아버님이십니다~! ^^
  • 오렌지story 2009/11/03 20:57 # 삭제 답글

    역시 비빔밥의 백미는 계란부침!!!
    깔끔하게 잘~ 부치셨어요~ ㅎㅎㅎ
    저거 보니까 또 배고파지네요 ㅠㅠㅠ
  • 무디 2009/11/03 21:41 #

    헤헤 죄송... ^^
    그래도 저 재료들 중에 제일 쉬운게 계란부침이더라고요. ^^
  • 냐하하~ 2009/11/04 22:25 # 삭제 답글

    정말 중요한 고추장은 어떻게 준비하셨나요??? ㅋㅋ~~~~~~~
  • 무디 2009/11/04 23:13 #

    에이~ 다 아시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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