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은 아닌 이야기...(117)
Ⅰ.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신인에게 중책(중요 배역)을 맡기는 것은 정말 부담이 큰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름 실력이 검증됐으니 시도하는 거겠지만 그 검증은 대부분 작은 일에서의 검증이지요. 즉, 큰 일(배역)을 맡겼을 때의 데이터는 존재하지 않는 겁니다. 다시 말해 크게 기용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모르는 거지요. 실력은 있지만 대담성이 부족한 경우 기대 이하의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물론 자신에게 주어진 첫 번째 기회를 멋지게 활용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처음으로 대표팀 주전 공격수로 내보냈더니 바로 골을 넣는 경우라 할 수 있겠죠. 이런 경우는 그야말로 찬사 일색이지만 반대의 경우는 그야말로 눈앞에 거의 지옥이 펼쳐집니다. 얼마 전 성우 이용신 씨가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진행하는 라디오방송에 전화연결로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이용신 씨를 달빛천사 주인공으로 기용할 때의 마음가짐(?!)이 생각나서 이야기했죠.. 이번 작품(달빛천사)를 망치면 주인공(이용신)과 PD(무디) 둘이 함께 접싯물에 코 박고 죽자고 종용(?!)했던 것을요.
Ⅱ.
저도 인간(?!)이기에 새로운 시도로 신선함을 추구하고픈 욕망도 있지만 안정적으로 작품을 이끌고 싶은 욕망도 매우 강합니다. 이 상충되는 두 욕망을 저는 대부분 균형 있게 현실로 실천해왔습니다. 두 욕망을 작품과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잘 분배하는 거죠. 성우 김장 씨를 처음 주인공으로 캐스팅했을 때를 살펴보겠습니다. 당시 아직 전속 성우였고, 몇 작품의 조연 정도로 목소리를 조금 알린 수준의 김장 씨를 단편이긴 했지만 당대 인기 애니메이션인 ‘천지무용 in love’ 의 주인공 ‘천지’ 로 캐스팅한 것은 당시로 보면 꽤나 간이 부은 커다란 모험이었습니다. 이 모험을 뒷받침(?!)하고자 그 외의 캐스팅은 매우 화려합니다. 최덕희, 박영희, 양정화, 이선주, 서혜정, 김은아 등등 작정한 느낌이 들 정도였죠. 이를 축구에 빗대어보면, 주전 포워드의 불안함을 노련하고 믿음직스러운 미드필드진으로 커버하려는 의도지요. 이와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천지무용 in love’ 보다 먼저 더빙한 ‘신비의 세계 엘하자드’ TV시리즈의 경우를 들 수 있겠네요. 이때 주요 조연들에 양정화, 이현진, 이지영, 이동은 등 실력은 있지만 아직 신인(전속성우)인 1기 성우들을 대거 기용하면서 여자 메인 배역엔 당시 왕성한 활동 중이었던 베테랑 박영희 씨를 기용했습니다. 이는 중심을 안전하게 잡아놓고, 신인들이 마음 놓고 개성을 발휘하도록 만들어본 것이죠. 이후 저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이 두 가지 예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여전히 의미가 살아있는 방식이기도 하고요.
Ⅲ.
그렇다면 제가 지금까지 더빙제작한 작품 중에서 캐스팅이 가장 모험적이었던 것은 어느 작품일까요? 다시 말해 위에서 말한 두 가지 예시를 무시하다시피 캐스팅을 단행한 작품 말이죠. 저는 주저 없이 1999년에 더빙한 ‘파딩숲 친구들의 모험’ 을 꼽습니다. 너무… 오래된 작품이죠? 기억하시는 분들이 거의 없으실 듯 합니다. 영어권 애니메이션이었고 동물들이 주인공인데 30편이 넘는 장편 시리즈였습니다. 사실… 주인공 캐스팅을 모험적으로 할 때는 ‘천지무용 in love’ 같은 단편이 좋죠. 혹 잘못돼도 부담이 적으니까요. 장편 시리즈의 경우엔 아무래도 주인공은 안정적으로 가고 조연급에서 파격을 시도하는 것이 안정적입니다. 하지만 ‘파딩숲 친구들의 모험’ 은 단 한 명을 제외하곤 오로지 전속성우들만을 캐스팅해 제작했습니다. 당시는 1기가 막 프리로 풀리고 2기, 3기가 전속 성우로 있을 때입니다. 전속 때부터 나름 유명세를 탔던 1기 여자멤버들이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 캐스팅이었던 거죠. 그나마 함께한 유일한 프리랜서 성우도 1기 남자성우인 최준영 씨. 그리고 주인공이 아닌 조연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할 정도로 파격적인 캐스팅을 했던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 작품을 통해 아직 신생아 취급을 받던 투니버스 성우들도 뭉치면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이는 기준 이상의 더빙 퀄리티로 작품에 반영되었죠. 실제 녹음현장에서는 이 캐스팅이 꽤 화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라면 몇몇 단편을 제외하곤 모두 타방송사 출신의 베테랑 성우들이 늘 작품을 이끌어왔었는데, 비록 영어권 작품(=매니아들이 큰 관심을 쏟지 않는)이지만 장편 시리즈를 전속 성우들로, 그것도 1기가 아닌 2기, 3기로 끌고 간 것은 당시의 현장 시각으로는 심할 정도의 파격이었기 때문이죠.
Ⅳ.
‘파딩숲 친구들의 모험’ 에 비교할 수준은 아니지만 이번에 더빙하고 있는 ‘사랑은 콩다콩’ 캐스팅도 기존 방식과는 다른, 나름 파격적인 캐스팅입니다. 헌데 전속 2년 차 성우를 장편 시리즈 주인공(노을 역의 김영은)으로 내세운 것은 지금으로선 파격적인 시도는 아닙니다. 이미 달빛천사의 이용신 씨나, 파워레인저 다이노썬더의 신용우 씨가 전속 2년 차에 이미 장편 시리즈 주인공으로 등극(?!)한 바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번엔 주인공과 함께 몰려다니는 주요 조연들도 대부분 전속 2년 차 성우들을 기용한 것이 파격적입니다. 30편 이상의 장편 시리즈에선 쉽게 보기 힘들죠. 하지만 ‘파딩숲 친구들의 모험’ 과 달리 남자 배역들은 모두 철저히 검증된 프리 성우들을 배치했습니다. 장편 시리즈가 갖춰야 할 안정감 또한 추구하기 위해서죠. 신용우, 홍범기, 최승훈 성우가 그들인데, 모두 아직 10년이 되지 않은 신인급 프리성우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미 투니버스에서 장편 시리즈 주인공으로 실력을 검증 받은 상태죠. 별다른 요구를 하지 않아도 알아서 캐릭터를 만들고 다듬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여자 배역들은 주연부터 주요 조연까지가 모두 2년 차 신인입니다. 베테랑 성우의 표현력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신선함과 패기만큼은 넘치는 상태죠. 그리고 선발 때부터 고려한 각자의 개성이 작품과 아주 딱 맞아떨어집니다. 마치 작년 전속 성우 실기시험 때 여자 성우들은 ‘사랑은 콩다콩’ 대본으로 시험을 치른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죠. 그리고 전원이 아직 20대이기에 초등학교 때의 느낌을 아직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유연함보다 리얼리티에 방점을 찍을 때 십분 고려하는 사항이죠. 그리고 녹음을 거듭해가면서 이제는 유연함도 갖추어가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꽤나 오랜만에 파격적으로 신인을 기용한 것에 비해, 더빙은 너무나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 ‘사랑은 콩다콩’ 은 베테랑 성우들이 하는 것보다도 더욱 원활하고 스피디하게 더빙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호흡이 짝짝 맞는 팀워크가 갖춰진 때문이죠. 이는 이번 신인기용에서 기대 이상의 결과를 낳게 할 원동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Ⅴ.
이번 ‘사랑은 콩다콩’ 캐스팅과 녹음을 진행하면서 확실히 일하는 데 있어서 ‘공식’ 에 의존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됐습니다. 신인을 기용하는 방식 또한 마찬가지겠죠. 하지만 그만큼 더 연구하고 실험해야 할 것입니다. 정답은 존재하지 않지만 최대한 정답에 가까운 답을 내놓을 수 있게 말이죠.
덧글
아무래도 입사하는 부분이니까 그렇겠죠? 대신 입사만하면 정말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 같습니다.
+덧, 태그가 화려합니다♥
어지간하면 당장 투입이 가능한 수준입니다.
그보다는...
본연의 강한 '개성'이 있는가...와...
연기로 감동을 줄 수 있을까가 중요하겠죠. ^^
컨셉을 상당히 잘 잡아왔더군요. ^^
키밀럭 재미있었습니다.^^
다시듣기로 들었는데 실컷 웃었답니다.
투니버스는 항상 여러가지 시도를 하고 있네요.
타 애니채널에 비하면 투니버스는 여러가지 시도하는 게 많은 것 같습니다.
we시리즈나, 투니페스티벌, 투니버스데이 등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에 많은 업적을 남겼기도했구요.
앞으로도 투니버스에 많은 발전이 있기를 바랍니다.
역시.. 개성과 감동인가요.. 알고는 있지만..
요즘은 정말 대단한 분들만 뽑히시는 것 같아요..
투니버스가 사라졌습니다... OTL
심슨 더빙한다길래 보고 싶었는데 말이죠. 흑.
그럼 이만......
아무래도 이번 신인들은 배짱이 남다른가 봅니다^^
나름 준비가 된 상태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
여자 성우님들이 모두 신인이심에도 불구하고
캐릭의 특성을 잘 표출하는 동시에 적절히 연기도 잘 하셔서 너무 재밌게 보고 있는 작품입니다.
여자 주연 3인방만 놓고 보자면
노은이, 다희, 향기
이 세 명이 모두 생긴 것도 다르고 성격도 다 다른데
세 성우께서 각자 목소리에 개성을 넣어주시고 서로 다른 성격의 친구들을
너무나 적절히 소화해주시어서
이 세 성우님들 연기 듣는 재미도 솔솔합니다.
그리고 주요 남캐라 할 수 있는 배역을 맡으신 승훈님, 용우님, 범기님의
자연스런 연기 또한 놓칠 수 없죠.
승훈님은 한누리가 자칫 느끼남 혹은 바람둥이로 비칠 수 있는데
한누리 만의 특징저기면서 또한 그 나이 또래 평범한 소년을 잘 표현하시는 것 같아요.
아...말할 거리가 너무 넘쳐나는 작품이라 말하다 보면 끝도 없을 것 같으니
이만 줄이겠습니다.
계속 애청해주세요!
게다가 저녁이라도 ㅠ ㅠ,,,집안 식구들 드라마나 다른 거 보느냐고;;;
비디오를 사야하는가..?
지금은 공채 성우가 아니더라도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공채 성우를 줄이는 것이 무의미하기도 해요.
자신이 성우할때는 10년은 해야 애송이 수준을 넘었다고 인정받았다;;;이야길 하시더군요.^ ^;;;
하지만 지금은 더빙실습까지 경험하고, 언더 생활도 하면서 성우를 하기 때문에...
예전 배선생님 시절로 치면...
지금 시점에서 성우에 합격하는 이들은 3-4년 이상 숙성된 상태로 들어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에요.
아마추어 성우분들이 더빙한 애니들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아무래도 상당수는 낯설고 연기가 아직은;;;& ^ ^
하지만 ...몇몇 분들은 목소리도 괜찮고 연기도 꽤 잘하시는 분이 계시더군요
그리고 가끔은 성우들도 목소리가 꽤 비슷한 경우도 있던데
어느 아마추어 성우분은 참 놀란게 정미숙 성우님 목소리와 꽤 비슷했습니다
이거 동영상을 본 동호회 덧글들도 정미숙 님이 아마추어 성우들과 하셨나요? 글까지 있었답니다
--실제로 성우분들이 개인적으로 지망생들과 어찌 알아서인지 같이 아마추어 성우 더빙하는 걸 도운 적이 있었거든요...꽤 오래전..은하영웅전설 애니 지망생들 더빙에 김환진 님이 같이 참여한 일이 있었답니다
^ ^;;
아따맘마에서 동동이가 딱 생각나는데요, 원피스 극장판 오마츠리(페스티벌) 남작 편에서 무치고로라든지
꾸준한 배역들을 활동하시지만 아무래도 동동이가 딱 떠오르는 건
우리 어머니가 애니에서 유일하게 즐겨보시던 것 때문에^ ^랍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하시던 말씀
"동동이 보면 정말 너와 성격이 판박이야! 말투까지도"
그래서 더더욱 잊지 못하나 봐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