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은 아닌 이야기...(175)
2001년 2월호부터 한국판 뉴타입에 칼럼을 연재했습니다. 만 14년이 넘었어요. 이번 호까지 모두 173편의 칼럼을 매달 써왔죠. 언젠가는 끝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그 마지막에 도달했습니다. 이런저런 사유로 한국판 뉴타입이 이번 호를 끝으로 휴간에 들어가기에 가장 오랜 필자였던 저도 마침내 손을 놓게 되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수년 전부터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2011년부터 현업PD를 떠난 탓에 이전과 같은 글을 연재하기 힘들어진 것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제목인 ‘비밀은 아닌 이야기’가 내포한 것은 PD인 저만 알고 있는 제작현장의 에피소드들 중 공개할 만한 것(=비밀로 숨길 필요가 없는 것)을 추려서 엮어낸 이야기… 입니다. 그렇기에 현장감과 흥미요소가 다분했고, 저 또한 연재하는데 부담이 덜했죠. 하지만 현업을 떠나니 매달 마감마다 이전보다 훨씬 큰 부담이 늘 존재해왔습니다. 하지만 한국판 뉴타입 필자 중 가장 오래된, 나름 역사적인 의미가 있기에 그야말로 ‘책임감’을 가지고 연재를 지속해왔습니다. 개인적으로 볼 때는 이제 한계가 온 시점에 제 스스로가 아닌 어쩔 수 없는 출판사 사정으로 연재를 마치게 되어 마음의 짐이 가벼워졌어요. 그렇지만 그 누구보다도 아쉬움이 큰 것은 숨길 수 없네요.
얼마 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한국판 뉴타입 창간호(1999년 7월호)를 펼쳐봤습니다. 뉴타입이 기본적으로 일본 잡지이고,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소식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국판이기에, 한국 애니메이션과 한국 성우들에 대한 정성이 듬뿍 담긴 기사들이 촘촘하게 들어있습니다. 더군다나 창간호이기에 한국판 뉴타입을 통해 한국 애니메이션계를 다루고자 하는 넘치는 열정과 의지를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녹음실 탐방 기사는 저도 수 차례 취재를 당했기에 정말 추억이 새록새록 솟아나더군요. 제가 처음 뉴타입에 등장한 것은 창간 다음 호인 1999년 8월호입니다. 이때 한참 전설의 ‘카우보이 비밥’을 녹음하고 있을 때인데 뉴타입에서 취재를 나왔죠. 사실 이 취재엔 숨겨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뉴타입 창간호를 보면 다음 호를 예고하면서 카우보이 비밥 녹음실을 소개할 것이라 나와있습니다. 헌데 아무런 사전협의 없이 올린 내용이었어요. 뒤늦게 창간호를 보고 이 사실을 안 제가 당시 좀 화를 냈습니다. 해서 여차하면 8월호에 카우보이 비밥 녹음실이 실리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렇게 됐다면 또 저와 뉴타입이 사이가 안 좋아지면서 칼럼 연재도 애초에 고려 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나 싶네요. 여하튼 인연이 있을 사이였기 때문인지 그 일은 잘 무마됐고, 이후 저는 뉴타입 취재에 적극 협조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죠. 그리고 마지막까지 관계를 유지한 사람이 되었고요.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뉴타입과의 추억은 2002년 11월호에서 저를 심층 취재(?!)한 것입니다. 당시 ‘SCENT OF PERSON’ 코너는 애니메이션 업계 인물을 심층 취재하는 내용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저를 취재하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때 제가 어렵다며 고사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그 즈음이 제 인생에서 손 꼽을 정도로 살이 찐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결혼 이후 계속 몸무게가 불더니 80kg을 훌쩍 넘어버렸고, 바지도 38인치 혹은 고무줄 바지나 입었던 시기에요. 그 이후 좀 더 살이 찌자 아내가 이태원에서 허리 40인치 청바지를 사왔던 일도 있었습니다. 아무튼 그 코너는 사진이 크게 여러 장 실리는 코너였기에 뚱뚱한 몸매로 등장하기 정말 싫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당시 담당 기자 분에게 나중에 살 좀 빼고 하자고 통사정을 했는데, 기자 분의 통사정이 더 강해서 결국 빵빵한 몸매를 자랑하며 취재를 당하기에 이릅니다. 그 이후 저는 독하게 마음을 먹고 살을 빼기 시작했죠. 시간이 흐른 뒤 뉴타입에서 다시 제가 연출하던 고스트 바둑왕 녹음실 취재를 나왔을 때(2005년 7월호) 저는 거의 총각 시절 몸매로 돌아가있었죠. 이를 확인한 기자 분이 설마 진짜로 살을 뺄 줄은 몰랐다며 이 에피소드를 기사에 삽입했습니다. 오래 전 이야기지만 여전히 생생한 추억이네요.
애니메이션 관계자 중 한국판 뉴타입의 휴간을 가장 아쉬워할 이들은 성우들이 아닐까 합니다. 창간호부터 꾸준하게 한국 성우들을 취재해왔고, 기획 기사도 많이 있었고, 그만큼 애정을 가지고 성우들을 소개해주었죠. 99년부터 끊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우 관련 기사를 개재한 곳은 한국판 뉴타입이 유일합니다. 창간 당시 신인 급이었던 성우들이 이젠 중견 성우가 되어있죠. 1999년 8월호 카우보이 비밥 녹음실 취재 시 신인 성우였던 양정화 씨만 봐도 세월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프리 성우가 된지 1년 지난 신인이었는데 요즘은 20년 경력의 중견 성우이자 성우 지망생들의 롤 모델이죠. 뉴타입에 등장한 많은 성우들이 취재에 감사하고 있는 것은 종종 듣곤 했습니다. 본인에게도 소중한 추억이 되면서 무엇보다 성우를 좋아하시는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자신을 충분히 소개할 수 있는 장이 바로 한국판 뉴타입이었으니까요. 아쉬워하는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리는 듯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 누구보다 아쉬움이 크실 담당 기자 분들께 감사 인사 올립니다. 예전보다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주셨음을 알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 드리고 훗날 다시금 인연이 닿게 되길 바랍니다. 지난 호부터 연재하려던 ‘투니버스 20년사’ 는 개인적으로 블로그를 통해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랜 시간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그동안 2개의 칼럼이 뉴타입에 실리지 않고 이 블로그에만 존재합니다.
해서 연재는 173회지만 칼럼 넘버는 175번까지 있습니다...
덧글
하지만 언젠가는 재간되겠죠.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뉴타입 칼럼을 통해 처음으로 무디님을 접하고, 이후에 이글루스를 이용하시는 걸 우연히 알고 나서 반가웠던 기억도 꽤 오래전이네요.^^)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b
'투니버스 20년사'도 기대되네요.+_+)
덕분에 지금 정식 발매 dvd와 블루레이에 더빙이 수록되어 잘 감상하고 있습니다.
국내 dvd, 블루레이 시장은 거의 죽은 거나 마찬가지임에도
카우보이 비밥은 나올 때마다 한정판(블루레이 가격만 해도 20만원에 근접)이 품절되더군요 ㅎ
투니버스의 명더빙 작품들이 dvd 블루레이 발매되었으면 하는데 국내 시장이 작다보니 발매는 요원하네요.
뭐 돈이 되어야 발매할 수 있는 것이라 발매하는 회사도 땅파서 장사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요.
그래서 투니버스가 옆 회사처럼 유로vod서비스로 제공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제작위원회 방식으로 제작된 건 판권이 복잡해서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해도 가능한 것들이라도 서비스가 되었으면 하네요.
창고에 고이 간직하기엔 아까운 작품들이 너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환상게임(날아오르라 주작이여)이 특히 보고 싶네요.
예전 작품까지 커버하지는 못하고 있죠.
특히 요즘은 HD다 보니... 예전 작품은 생각은 있는데
좀 여러모로 힘든 상황입니다.
언젠간 투니버스가 애니매이션체널로돌아와
명작더빙을 더 많이 보여주었으면좋겠습니다.
언젠간 돌아오길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