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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명화 사태를 보며…

비밀은 아닌 이야기... (50)

*이번 호에는 애니메이션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간접적인 관계가 있는 이야기를 하게 됐습니다. 애니메이션에서 빠질 수 없는 ‘성우’들과 관련된 ‘토요명화’ 이야기 입니다.

토요명화 사태를 보며…

 필자가 어린 시절엔 토요일 밤마다 무척 설레곤 했었다. 매주 토요일 밤 시간엔 엘리자베스 테일러, 오드리 헵번 등 당대의 뛰어난 배우들이 출연한 이른바 ‘외화’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안방에서 TV로 외국의 명화들을 감상할 수 있었던 시간! 바로 그 시간으로 인해 ‘안방 극장’이라는 용어가 탄생했으리라.

 헌데 수십 년의 역사를 지닌 이 ‘토요명화’에 최근 아주 거센 겨울바람이 불었다. 한류 열풍의 주역인 드라마 ‘겨울연가’를 토요명화 시간에 무려 10주 동안 재방송하는 것! 거기다 그 재방송 기간 동안 토요명화는 시간대가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편성표에서 간판을 내리게 됐다. 이로 인해 수많은 항의가 이어졌고, 각 게시판은 이와 관련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러던 중 토요명화와 같은 이른바 ‘외화’가 단순히 성우들의 일거리로만 표현된다든지, 우리말 더빙이 시각 장애우를 위한 배려로 언급되는 상황들을 보게 되었다. 

 수년 전에 전국민의 영어교육을 위해 공중파에서 외화를 자막방송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 이후에 듣는 더욱 어처구니없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과연 오늘날의 외화더빙방송이 그런 소리를 들어야 되는 이유가 뭘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지금도 토요명화와 같은 외화더빙방송은 필요하다!

 필자만 하더라도 더빙PD라는 직업적인 면 때문이 아니라도 종종 TV에서 방송하는 외화를 보곤 한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부터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일이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행사로 변하고, 바쁜 생활로 인해 따로 비디오를 빌려 보기도 힘든 형편이다 보니, 꽤 유명한 외화를 TV에서 방송을 통해 처음 접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현재 대부분의 아이가 있는 맞벌이 부부들이 그럴 것임…). 그러다 보니 보고싶었던 외화를 TV에서 방송해주면 정말로 고마워하고 있다. 거기에 극장과 달리 집중이 힘든 ‘가정’이라는 상황에서의 ‘더빙 방송’은 아이 때문에 잠시 주의가 산만해지더라도 내용을 놓치지않을 수 있는 훌륭한 ‘서비스’이다.

 방송은 비디오와 달리 잠시 멈춰놓고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동시에 방송을 비디오로 녹화하면서 보는 수고를 할만한 사람은 무척 드물 것이다. 아마 거의 없지 않을까? 때문에 더빙방송은 오랜만에 외화를 감상하는 중에 아이가 물 달라는 칭얼거림 정도엔 바로 응해줄 수 있는 가정용 서비스라고 본다. 너무나 당연한 ‘우리말 보호’의 측면은 언급하지 않겠다. 특히나 국영방송에서의 우리말 보호는 의무라고 보는 것이 옳다. 해서 이 자리에서는 위와 같은 서비스 측면에서의 장점을 말하려 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TV외화 방송은 실제로 그 외화를 보지 못한 시청자들이 본 사람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만으로도 존재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관객 천 만 명을 돌파한 우리 영화가 나왔다. 젊은 층에서는 거의 모든 이들이 다 봤다고 평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영화들도 관람하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 단지 그런 이들이 나이가 있고, 게시판 등에서 활동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리고 오히려 생활에 쫓기는 이들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여가보내기가 바로 TV시청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물론 지금의 토요명화 등이 예전 필자가 어린 시절과 같을 수는 절대로(!!!) 없다! 그 시절엔 정말 온 가족이 즐겨보는 인기 프로그램이었다. 요즘은 우리 드라마에서도 너무 흔한 일이 되어버린 키스 장면을 유일하게(!!) 볼 수 있었던 작지만 엄청난 장점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영상문화를 접하는 거의 유일한 창구로서의 순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유명 외화가 국내 극장에 개봉되기도 전에 불법경로를 통해 미리 감상이 가능한 시대에 예전과 같은 인기를 누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예전에 비해 고정 시청자 층이 얇아졌기에 시청률이 떨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마냥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토요명화가 인기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 논리라면 어떤 외화든 TV방영 시 시청률이 낮아야 한다. 헌데 그렇지 않다! 국내 개봉 시 관람객이 많았던 인기 외화일수록 시청률이 높다. 극장에서 본 사람이 많은데도 말이다. 이유는 역시 극장을 찾지 않은 더 많은 시청자들의 움직임과 함께, 좋은 외화이기에 TV를 통해 ‘다시’ 시청하는 이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TV에서 우리말 더빙으로 감상할 경우, 아무리 자막에 익숙한 이들도 조금만 마음을 편하게 하고 감상하면 극장에서 놓친 세세한 부분을 챙겨볼 수 있는 장점이 존재한다. 더빙의 경우는 자막보다 더 많은 표현을 할 수가 있기에 압축된 자막보다 더 자세히 내용을 전할 수 있고, 실제 배우가 말하는 그 시점의 감정을 따라갈 수 있다. 자막은 배우가 미처 표현하지 않은 대사가 미리 튀어나오는 일이 많다. 따라서 배우의 감정표현을 느끼기도 전에 내용을 알고 반응하는 일이 많다. 이에 비해 배우의 감정을 따라가며 녹음한 더빙의 경우는 비록 그 배우의 실제 목소리 연기는 아닐지라도 가장 근접한 선에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한편에서는 실제 외국 배우들의 목소리와 다른 성우들의 목소리 때문에 이질감이 느껴진다며 더빙을 폄훼하기도 하지만, 잘 살펴보면 오히려 배우들의 이미지를 더 강화해주는 경우가 더 많이 존재한다. 아놀드 슈와제네거 같은 배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만일 슈와제네거가 한국어에 능통해서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한국어 더빙을 했다면 어떨까? 오히려 이질감이 심화될지도 모른다. 물론 미스캐스팅으로 인해 호감을 떨어뜨릴 수도 있고, 몇몇 아주 개성강한 목소리를 지닌 외국 배우들의 경우는 알맞은 성우를 찾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노력하기 나름이라 본다. 안방극장에 자주 소개되는 유명 배우들의 경우는 확실한 전담성우를 두어서 이질감을 줄이고, 개성강한 목소리의 배우들의 경우에는 오디션을 통해 담당성우를 결정한다면 지금보다 더욱 듣기 좋은 외화더빙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시청자들이 ‘볼만한’ 좋은 외화들을 편성해야 할 것이다. TV방송에서의 외화시청률의 하락은 우리나라의 드라마나 오락프로그램의 발전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떨어진 탓도 있지만, 수준 이하의 외화들이 편성되어 온 탓도 적지 않으니 말이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는 토요명화 사태로 인해 대립관계가 지속되던 KBS성우극회와 방송사간에 해결국면이 보이고 있다. 특히나 겨울연가의 재방이 끝난 뒤 수준 높은 외화를 집중 편성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반갑다. 부디 이번 일을 통해 우리말 더빙의 장점을 십분 살린 질 좋은 토요명화로 다시 태어났으면 한다.

by 무디 | 2005/09/28 20:35 | 뉴타입 컬럼(01-50)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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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Dante at 2005/09/30 02:28
토요명화..되돌아와서 다행입니다...휴우..
Commented by 皇昴流 at 2005/09/30 10:35
구구절절 공감갑니다. 토요명화가 돌아왔어도 아직까지 많은 외화(요즘은 특히 위기의 주부들)가 자막방영 요구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사람들에게 이렇게 논리적이고 조리있게 설명해줄 수 있다면 좋겠어요.
자주 나오는 배우의 전담성우는 요즘 방송사마다 여러명으로 갈라지는 추세라서 조금 안타깝습니다.
Commented by 지사모모집 at 2008/09/04 19:43
KBS는 외화의 인기를 살리려고 나름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SBS는 프리즌 브레이크 같은 대작들을
계속 하고 있어서 다행이지만 문제는 MBC입니다. MBC는 외화에 별로 투자를 하지 않는
추세라서 조금 아쉽네요.ㅠ
Commented by 무디 at 2008/09/05 11:39
그런가요... 내막을 모르니 뭐라 하긴 그렇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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